소설『백치』속 장면 사형장에서의 상황은『백치』에서 처형 직전 살아난 어떤 사람에게서 들은 이야기라며 다음과 같이 보다 구체적으로 서술된다. “그 사람은 다른 죄수들과 함께 사형대 위로 끌려가서 정치범으로 총살형을 받는다는 선고문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20분쯤 후에 사면령이 내려져 그보다 감형된 형량을 선고받게 되었지요. (……) 그는 마치 어제 일처럼 모든 걸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 몇 분 동안 어느 한 순간도 결코 잊을 수가 없다고 했어요. 세 개의 기둥이 구경꾼들과 병사들 곁에 있는 처형대에서 스무 발자국쯤 떨어진 곳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죄수들이 여러 명 되어서였지요. 처음엔 세 명의 죄수를 그 기둥으로 끌고 가서 거기다 묶었습니다. 그리고 옷자락이 긴 흰 가운 같은 사형복을 입히고, 총이 보이지 않도록 흰 벙거지를 눈 위까지 눌러 씌웠지요. 그러고 나서 각 기둥의 정면에 서너 명의 병사가 한 조를 이루어 정렬을 했습니다. 내가 아는 그 죄수는 앞에서 여덟 번째로 서 있었고, 세 번째 처형을 기다리고 있었지요. 신부가 십자가를 들고 모든 죄수들 앞을 돌아다녔습니다. 그에게 목숨이 붙어 있을 시간은 5분 정도밖에 없었던 거지요. 이 5분이 그에게 있어서는 무한대의 시간이고 엄청난 재산처럼 여겨졌다고 그는 술회했어요. (……) 그는 남아 있는 5분 동안에 해야 될 일을 정리했던 거지요. 우선 동료들과의 작별에 2분을 할당하고, 마지막으로 자기 자신을 성찰해보는 데 2분,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마지막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데 할당했답니다. 그는 이 세 가지 결정을 시간에 맞춰 그대로 실행에 옮겼던 일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어요.” 앞의 E. H. 카의 『도스토옙스키 평전』과 『백치』에서의 소설적 묘사 보다 후일 두 번째 아내 안나 그리고리예브나가 도스토옙스키 사후에 쓴 회고록의 관련 대목이 당시 도스토옙스킹의 심리상태를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될 듯하다. 안나는 1866년 속기사로 일하기 위해 도스토옙스키를 처음 찾아간 날 그가 죽음 직전까지 갔었던 지난날 처형장에서의 쓰라린 기억을 들려주었다며 이렇게 기록했다. (계속) <저작권자 ⓒ 세종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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