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의 아들로 태어나다 도스토옙스키(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는 1821년 10월 30일 모스크바 마린스키 빈민구제병원 의사아파트에서 이 병원 의사 미하일 도스토옙스키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모스크바의 현재 박물관이 되어있는 노란색 3층짜리 의사아파트 건물의 길가쪽 벽에는 ‘1821년 11월 11일에 도스토옙스키가 태어난 곳’이라는 동판이 붙어있다. 앞의 날짜와 다른 것은 제정러시아 때는 율리우스력을 썼고, 볼셰비키 혁명 후부터는 그레고리력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당시 율리우스력으로 10월 30일은 현재의 그레고리력으로 11월 11일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아버지는 의사였으나 성격이 급하고 화를 잘 냈다고 전해지며 어머니는 신앙심이 깊은 자애로운 분이었다. 여러 곳의 도스토옙스키 박물관에는 어디에나 똑같은 도스토옙스키 부모의 초상화가 걸려있는데 무엇을 근거로 그렸는지는 몰라도 내겐 볼 때마다 왠지 부자연스럽게 보인다. 도스토옙스키의 가계 도스토옙스키 가계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 다로보예에서 만난 해설사 페트로바씨의 설명에 따르면 그의 먼 조상은 타타르(*몽골계) 핏줄이며, 오래전에 폴란드에서 살다가 다시 러시아로 들어와 벨라루스에 살았다. 도스토옙스키의 아버지 미하일은 벨라루스 다스또예보에서 태어났으며, 성직자였던 아버지(도스토옙스키의 할아버지)가 우크라이나로 가게 되어 그곳에서 성장했다. 미하일도 부친의 뒤를 이어 성직자가 되려고 신학교에 갔다가 진로를 바꿔 1809년 모스크바의 황실 의학 아카데미에 진학했다. 그 후 1812년에 나폴레옹 전쟁 때는 군의관으로 복무했고, 전쟁 후 모스크바의 마린스키 빈민 구제병원에서 일했다. 제법 큰 규모의 병원이었다. 도스토옙스키 위로 1820년 생인 형 미하일(*아버지와 이름이 같은데 이는 러시아에서는 흔한 일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이름은 표도르인데 후일 아들 이름도 표도르로 지었다.)이 있었고, 도스토옙스키 다음으로 아들 둘 딸 셋 등 다섯이 더 태어났다. 모두 7남매였다. 도스토옙스키 가계가 정말 귀족이냐 아니냐 하는 논란도 있다. 아버지 미하일이 의사로서 열심히 일한 결과 귀족 명부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원래 귀족 가문의 자손이었다는 기록도 있다. 이에 대해 필자가 방문했던 러시아 다로보예 도스토옙스키 박물관의 해설사 페트로바씨는, 도스토옙스키의 가계는 원래 귀족이었으나 서류상으로 증명 하지 못하다가 1828년에 증명이 돼 공인을 받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의사로 일하며 그동안 열심히 모은 돈으로 3년 후 다로보예의 영지를 사들인 것이라고 했다. 아버지 미하일은 병원 일 외에 개인적인 바깥 진료도 했다고 한다. 요즘으로 말하면 본업 외에 알바도 한 것이다. 영지를 사들인 것은 귀족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서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의사의 사회적 지위는 별로 높지 않았다. 그리고 귀족 명부에 올랐다고는 해도 아버지 미하일 도스토옙스키의 귀족으로서의 위치는 보통 잡계급으로 불릴 정도의 낮은 등급이었다. 도스토옙스키는 형 미하일과 더불어 문학에 관심이 많았고 특히 푸시킨(1799~1837)을 좋아했다. 1837년 1월, 푸시킨이 결투로 죽었을 때 형 미하일과 도스토옙스키(당시 16세)가 몹시 흥분한 모습을 보였다고 동생 안드레이가 후일 술회한 바 있다. (계속) <저작권자 ⓒ 세종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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