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에서 겪은 전쟁같은 코로나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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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즈에서 겪은 전쟁같은 코로나 사태
  • 임수민(영국 큐나드 선사 크루즈 ‘’퀸 엘리자베스‘호 승무원)
  • 승인 2020.03.25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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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객들 모두 하선시키고 배에 남은 승무원들의 앞날은?
퀸 엘리자베스호
퀸 엘리자베스호

314일 오후 2시경, 캡틴으로부터 스피커를 통해 선내 방송이 있었다. 315일 이후의 크루즈가 코로나 팬데믹 사태로 인해 취소되었으니, 내일 시드니에서 모든 승객은 하선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승무원 그 누구도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다. 모든 상황에 있어서 가장 일선에서 대응하는 리셉셔니스트인 우리도 아무 것도 모르는 채 방송을 들은 승객들이 하나둘 몰려오기 시작했다. 당시 데스크에 있던 나를 포함해 모든 동료들은 지금 들은 방송이 우리가 아는 전부이며 죄송하지만 이후 상황 및 하선 절차에 대한 업데이트가 있을 것이라는 말 밖에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머릿속에서는 32일 하선 예정이었던 날짜를 사태가 진정되면 내리고자 48일로 미룬 상태인데 앞으로 나는 언제 어떻게 내릴 수 있는 건지, 이 배가 어디를 가는 건지, 회사가 당분간 운영 중지를 하게 되는 건지, 그렇게 된다면 나는 언제 다시 일을 할 수 있는 건지, 아직은 내가 계획한 때가 아니라 내리기 싫은데, 내려서 다른 일을 한다고 해도 이런 상황에는 쉽지 않을 텐데, 경력이 단절되는 건가, 등등 여러가지 생각들이 교차했다. 하지만 걱정에 잠겨 있을 수 있는 시간은 단 1초도 없었다. 체크아웃 전날인지라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끊임없이 승객이 줄 섰고, 게다가 연속하여 크루징할 예정이었던 승객의 문의 및 컴플레인 때문에 평소보다도 훨씬 더 많이 바쁘고 빠르게 지쳐가고 있을 뿐이었다.

임수민 승무원
임수민 승무원

꿀 같은 1시간의 저녁 휴식 시간을 즐기고 다시 전장(데스크)으로 돌아왔다. 동료 홀로 언제나 답답하게 허우적거리는 신입 2명을 데리고 피 터지는 방어전을 치르고 있었다. 그 상황이 얼마나 고되고 울분 터지는지 알기에 빠르게 컴퓨터를 켜고 바톤 터치를 했다. 이제는 내 차례다. 하나하나 쉬지 않고 끊임없이 각기 다른 상황을 최대한 신속하고 정확하게 최선을 다해 밝은 미소로 친절하게 처리해야 한다.

취소된 크루징에 대해서 어떻게 보상할 것인지 재촉해 오는 승객에게는, 모든 비용은 100프로 환불될 것이며, 추후 큐나드를 이용할 경우에 이번 크루징을 위해 지불한 금액의 50프로에 해당하는 선상 크레딧을 제공할 것이라고 한다. 동의하고 돌아가는 승객이 있는가 하면, 그러면 언제 어떻게 환불할 것이냐고 묻는 승객이 있다. 상식선에서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다. 카드로 지불했다면 카드로 환불될 것이고, 시기는 카드사에 따라 다를 것이다. 여행사를 통해 지불했다면, 회사는 여행사로 환불하고 여행사가 승객에게 환불 조치하는 것이다. 내 말을 믿을 수가 없으니 매니저를 부르라는 승객도 있다. 매니저가 나와서 같은 답을 하면 동의하고 돌아가는 승객도 있는가 하면, 그래도 믿을 수 없다고 서면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귀국 교통편에 대해 물어오는 승객이 굉장히 많았다. 비행기 티켓을 수배해야 하는 경우인데, 이 일은 선상에서 하는 일이 아니라 본사 담당 부서에서 대처하는 일이다. 우리는 그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다. 승객에게 어느 공항으로 가야 하는지를 물은 후, 본사 담당 부서에서 내일 비행기 혹은 최대한 빠른 날짜로 예약한 후 연락이 올 테니 기다려 주시면 방으로 연락 드리겠다라고 대처한다. 동의하고 고맙다며 돌아가는 승객이 있는가 하면, 그러면 이 항공사가 좋다든지, 비즈니스 클래스만 탄다든지, 밤 비행기는 싫다든지, 지금 당장 예약하라고 소리를 지른다든지, 내 말을 믿을 수가 없으니 매니저를 부르라는 승객도 있다. 전세계적인 상황 및 짧은 시간 내에 500여명의 요구를 처리해야하는 상황을 상식선에서 예측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승객은 항상 꼭 있기 마련이다.

그 중에는 긴장감과 피로로 굳어져 가는 얼굴에 다시 웃을 수 있는 힘을 주는, 배려의 마음이 고마워서 울컥하게 하는 승객도 있다. 승객 입장에서는 알아서 어련히 다 대처해줄 테니 기다리기만 하면 되지만, 우리는 보기에 너무 안쓰럽다며 힘내라고 초콜렛을 사서 일부러 다시 긴 줄에서 기다려 준 승객. 국적을 묻고는 가족 및 친구 걱정만해도 답답하고 힘들텐데 집에도 못가고 안쓰럽다며 위로해 주는 승객. 승객이야 내리면 그만이지만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냐며 걱정해 주는 승객. 데스크 앞에서 우리를 향해 힘내라며 힘껏 소리쳐 응원해 주는 단골 승객 미스 돌리 할머니. 그렇게 고마운 승객도 있다.

그 중에는 스스로 굉장히 적절하고 현명한 조치를 하는 승객도 있다. 회사에서 많은 인원을 처리하기 힘들 것 같으니 본인이 알아서 변경하겠다며, 나중에 비용 청구할 수 있는 연락처를 요구하고, 대신 그로 인해 발생되는 인터넷 비용은 우선 선상에서 부담해 달라는 경우이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각자의 자리에서 할 일을 하며, 새벽 3시경이 되어서야 비행기 티켓 및 공항 교통편, 호텔 숙박 등 자세한 내용과 시간을 기재한 편지를 방문 밑으로 하나하나 집어넣을 수 있었다.

그 중에는 선내 방송을 했는데도, 방으로 전화를 했는데도, 서면을 통해 알렸는데도 불구하고, 밤중에도 나타나지 않은 승객도 있다. 해는 저물어 갔고 배는 시드니에 가까워져 갔다. 정박함과 동시에 전승객 하선에 대한 방송이 있었다. 밤 중에도 나타나지 않았던 몇 승객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승객, 강제 하선이라니 말도 안된다며 캡틴을 부르라는 승객, 1시간 동안 토하는 화를 들어주며 비행기 티켓을 현장에서 예약해야 했던 승객, 삿대질과 욕을 들으며 호텔행 버스로 안내해야 했던 승객, 내릴 수 없다며 카페트 위에 누워버려 시큐리티까지 출동하여 긴 시간을 설명하고 설득하여 겨우 하선시킬 수 있었던 마지막 2명의 70대 노부부 영국인 승객, 그 어떤 승객도 쉬운 승객은 없었다.

그 어떤 승객이든 모두 일단 내리게 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임무였고, 315일 오전 11시경 NO 승객 ONLY 승무원이 되었다.

한시간 정도 숨을 돌리며 데스크를 재정비하고 있을 때, 선내 방송이 울렸다. 모두 수고했다며, 아직 회사에서 추후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 다른 소식은 없지만, 일단 시드니를 즐기고 모두 새벽 2시까지는 돌아오라는 내용이었다. 이미 많은 선사가 코로나 팬데믹 사태로 인한 국경 봉쇄 등의 이유로 운영 중지를 발표한 상태였고 우리 회사 또한 그럴 것이라고 예측했기 때문에 한동안은 육지를 밟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일단은 한껏 즐기고 새벽 늦게 배로 돌아왔다.

317일 오후 2시경, 지금으로서는 일단 411일까지의 모든 크루즈는 취소하며 전승무원 승하선없이 추후를 계획하겠다는 선내 방송이 있었다.

319일 오후 12시경, 당일 저녁 9시반경에 호주 글래드스톤 근처에서 닻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며 추후 어떤 항구에 접안할 수 있을지는 미정이라는 선내 방송이 있었다.

320일 오후 12시경, 아직도 다른 소식은 없다며 근방에 30척은 닻을 내리고 있다는 선내 방송이 있었다. 창밖으로 봐도 족히 컨테이너 15척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상태로 4월 또는 5월까지도 배에만 있어야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나라가 이미 국경을 봉쇄하고, 공항을 닫아버리고, 자국민의 귀국도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귀국할 방도를 찾는 것도 힘들지만 귀국할 수 있다고 해도 배에서 해외에서 귀국했다는 이유만으로 귀국과 동시에 격리 조치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운영 재개도 불가능하지만, 1천명에 다르는 승무원을 모두 귀가 조치하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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