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Undefined index: HTTP_ACCEPT_ENCODING in /home/inswave/ins_news-UTF8-PHP7/sub_read.html on line 3
쌀로 밥값 냈던 울릉도 여행의 추억:세종경제신문
로고

쌀로 밥값 냈던 울릉도 여행의 추억

독도 가는 길 (5)

이정식 / 언론인 | 기사입력 2014/05/26 [10:57]

쌀로 밥값 냈던 울릉도 여행의 추억

독도 가는 길 (5)

이정식 / 언론인 | 입력 : 2014/05/26 [10:57]
▲ 독도의 두 섬 중 동도에 있는 독립문 바위

설악산 등정 후 포항거쳐 울릉도로 

조금 억지를 섞어 말한다면 나의 독도와의 인연은 42년전인 197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대학 1학년 때인 그해 여름, 나는 혼자 울릉도에 갔었다. 독도에 배가 다녔다면 당연 독도가 목적지였을 것이다. 그 당시는 일반인이 혼자 독도에 가는 것은 꿈도 꾸기 어려울 때였으므로 나는 일단 울릉도까지 가보기로했다.

울릉도 여행은 친구들과 함께한 설악산 등정 후 실행되었다. 설악산 등정팀은 나를 포함해 다섯명이었다. 서진호(현 서울대 교수), 김광준 (현 KAIST 교수), 권오상 (현 중앙대 의대 교수), 박인배 (현 세종문화회관 사장)가 그들이다.
우리는 서울을 출발해 인제군 용대리에서 버스에서 내려 내설악의 백담사까지 가서 텐트를 치고 첫날밤을 보낸 후 이튿날 오세암까지 올라 갔다. 당초엔 봉정암을 거쳐 설악산 정상인 대청봉에 갔다가 양폭산장 쪽으로 내려 갈 계획이었다. 그런데, 백담사를 떠나면서부터 굵은 비가 계속오는 바람에 봉정암 보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오세암으로 방향을 틀게 되었다. 오세암으로 가니 암자 바로 아래 폐가가 된 집이 눈에 띄었다. 오세암을 개축할 때 인부들이 숙소로 사용하던 집이라고 했다. 맨 흙바닥이었으나 다행히 지붕에서 비가 새거나 하지는 않았다. 밥을 해 먹고 흙바닥에 판초우의를 깔아 잠자리를 만들고 그날 밤을 보냈다. 다음날에도 비가 계속 오는 바람에 이곳에서 하루를 더 지체할 수 밖에 없었다. 
오세암 폐가에서 이틀을 자고 난 후에야 비가 개어 우리는 마등령을 넘어 외설악의 설악동으로 내려왔다. 설악동에서는 신흥사 뒤의 계곡에서 느긋하게 밥을 지어 먹은 후 텐트를 치고 다시 일박(一泊). 다음날 오전 속초로 나왔다.
나는 속초의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네 친구와 헤어졌다. 서진호, 김광준, 권오상군은 서울로 가고, 박인배 군도 나처럼 혼자 다른 곳으로 떠났다. (박인배 군은 당시 강릉, 포항거쳐 대구까지 갔다가 동대구에서 완행 밤차를 차고 서울에 왔는데 열차 승강구에 앉아 달을 쳐다보다가 깜박 졸아 손잡이를 놓는 아찔했던 순간도 있었다고 훗날 술회했다.)

나는 속초에서 일단 삼척행 버스를 탔다. 울릉도에 가려면 포항에서 배를 타야했으므로 포항가는 버스가 있는 삼척으로 간 것이다.
지금은 강원도나 경북의 해안 도로가 매우 잘 닦여 있지만, 당시만해도 강릉 아래 동해안 길은 참 험했다. 지도상에서 볼 때 해안을 따라 내려가는 도로이니 속초나 강릉 인근처럼 평탄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강릉에서 삼척 가는 길, 삼척에서 포항 가는 길 모두 굽이굽이 돌아가는 높은 낭떠러지 산길이 많았다.
혼자 떨어진 첫날은 삼척의 한 여관에서 잤다. 잠을 한데서 잘 수는 없으므로 여관비는 어쩔수 없지만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 밥은 모두 해먹기로 하고 커다란 배낭에 쌀과 부식을 넉넉히 넣어가지고 떠났기 때문에 그날 저녁과 다음날 아침까지는 가지고간 버너로 밥을 잘 해먹었다.

그런데 이날 저녁 포항에 도착한 후 문제가 생겼다. 갑자기 버너가 작동을 하지 않았다. 휘발유를 원료로 쓰는 당시 유행하던 푸리무스 야외용 소형 버너였는데 당장 수리할 방법이 없었다. 포항에서 식사를 어떻게 해결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조그만 여관에서 잠을 자고 나와 아침에 울릉도행 배를 탄 후, 점심 때쯤 갑판위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갖고 있던 생라면을 우적우적 씹어먹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당시엔 아침에 배를 타면 저녁 무렵에야 울릉도에 닿던 때였다.

▲ 울릉도 도동항 (2014.5.16)

도동항에서 갖고간 쌀을 식사값으로 지불하다

도동항에 내려보니 비탈진 마을이 자그마했다. 손수레(당시엔 구루마 또는 리어카라고 불렀다)는 여러대 보았는데 자동차는 못 본 것 같다. 그때까지 울릉도에는 자동차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밥해 먹을 수단이 없어졌으므로 밥을 사먹어야 했지만 수중에 돈이 별로 남아있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한 식당에 가서 사정 이야기를 하고 갖고 간 쌀을 밥과 바꿔먹었다. 식사값을 쌀로 지불한 것이다. 다음날 아침까지 두끼를 그렇게 해결했다.
저녁 밥을 먹을 때, ‘울릉도까지 왔으니 현지의 오징어 맛은 좀 보고가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에 오징어 회도 좀 달라고 했는데, 싱싱하지도 않고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주인 말이 좋은 것들은 다 뭍으로 가서 그렇다고 했다. 나중에 들어 보니 오징어는 9월부터 제철이란다.
당초엔 하루 이틀 머물 생각이었으나 상황이 변하여 더 이상 머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주위가 모두 높은 산 뿐이어서 갈 만한 곳도 구경할 만한 곳도 없는 것 같았다. 도동항에서 독도는 볼 수 없었다. 밤이 되니 어두운 바다 저편에 환한 불빛을 뿜어내는 오징어배들이 보였다.
그 이튿날 나오는 배편으로 포항으로 다시 돌아왔다. 나의 울릉도 여행은 그렇게 종일 배타고 가서 도동항 한번 둘러보고 시들한 오징어 회 몇 점 먹고, 하루 자고 다음날 종일 배타고 다시 포항으로 돌아온 것이 전부였다. 포항에서는 기차를 타고  동대구역에서 경부선으로 갈아탄 후 서울로 왔다. (계속)

  • 도배방지 이미지

포토/영상
이동
메인사진
무제2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