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식의 작가노트] 도스토옙스키의 자유 (2) - 정신적 자유의 길
상태바
[이정식의 작가노트] 도스토옙스키의 자유 (2) - 정신적 자유의 길
  • 이정식 작가
  • 승인 2020.03.20 00: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도스토옙스키 사진과 그가 쓰던 촛대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스토옙스키 박물관)
도스토옙스키 사진과 그가 쓰던 촛대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스토옙스키 박물관)

조시마 장로는 이어 수도사의 길을 이야기 하면서, 고립된 삶을 사는 것은 수도사들이 아니고 수도사들이 그런 삶을 산다고 비웃는 그들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조시마 장로는 진정한 자유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설교를 하는데, 이 역시 도스토옙스키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다.

“수도사의 길은 다릅니다. 사람들은 복종과 정진, 기도를 비웃기까지 하지만 오로지 그 속에만 참된 진정한 자유에 이르는 길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자신에게서 과도하고 불필요한 욕구를 끊어 버리고, 이기적이며 자만심 넘치는 의지를 억제하며, 복종의 길에 채찍을 가해 하느님의 도움을 받아서 정신의 자유와 그에 따르는 정신적 환희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고립에 빠진 부자, 그리고 물질과 습관의 전횡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인간> 중 누가 위대한 사상을 선양하고 그 사실에 봉사하겠습니까?

수도사는 고립된 생활 때문에 비난받습니다. <당신은 인류에 대한 형제적 봉사 정신을 잃은 채 자신만을 구원하기 위해 수도원 담장 안에 고립되어 있지 않소>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누가 더 형제애를 위해 열의를 다하는지 다시 한번 살펴보십시오. 왜냐하면 고립된 삶을 사는 것은 우리들이 아니라 그들이며, 그들은 그 점을 깨닫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조시마 장로는 이런 이야기들을 하기에 앞서 수도사들에게도 문제 인물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전제한다. 처음부터 무조건 수도사를 옹호하지 않는다. 그러한 예는 과거나 지금이나 다 적용될 법한 것이다.

“사실 안타깝게도 수도원에도 건달, 호색한, 난봉꾼, 무례한 방랑자들이 많습니다. 교육받은 세인들은 우리들을 향해 <당신들은 게으름뱅이들이며 사회에 전혀 쓸모없는 인간들이고, 남의 노동력으로 살아가는 파렴치한 거지들이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수도원에는 겸손하고 유순하며 고독을 갈망하면서 정적 속에서 기도에 정열을 불사르는 수도사들도 많습니다.

(···)

내가 고독하게 기도를 갈망하는 유순한 사람들로 인해 어쩌면 러시아 대지는 다시 한번 구원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고 말하면 몹시 놀랄 것입니다!“

도스토옙스키는 조시마 장로를 통해 진정한 자유에 이르는 길은 욕구불만과 이기심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설교하면서 정신적 자유를 얻는데는 신앙이 필요하다고도 강조한다. 신앙심 깊은 도스토옙스키다운 말이다.

육체적 속박으로부터의 자유를 얻은 후에 도스토옙스키가 자신이 말한 진정한 정신적인 자유를 얻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는 작품 속에서 독자들에게 그 길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 궁금한 것이 있다. 도스토옙스키는 평생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때가 없었다. 시베리아에서 궁핍하게 살 때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 온 후 1864년에 잡지를 같이 하던 형 미하일이 갑자기 죽으면서 형이 남긴 거액의 빚을 안게 됐다. 그 빚은 그가 죽기 1년 전인 1880년 초쯤에야 겨우 다 갚았다. 두 번째 아내 안나의 야무진 살림살이와 출판업 등 사업수완 덕택이었다. 물론 그의 소설들에 대한 성가가 높아지면서 원고료 수입이 늘어난 것을 빼놓을 수는 없다.

『카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을 쓸 때는 그가 어느 정도 경제적 안정을 이뤘을 때였다. 그가 30대 후반에 신체적 자유라는 첫 번째 자유의 목적을 이룬 후 정신적 자유를 찾아갈 때에 경제적 속박의 요인이었을 빚의 문제는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평생 돈 걱정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도스토옙스키가 ‘궁극적인 자유를 가로 막고 있는 것은 빚더미’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죽음의 집의 기록』에서 ‘돈은 주조된 자유’라고 이렇게 설파한 바 있기 때문이다.

“여기(시베리아 수용소)엔 장화공도 단화공도, 재봉사도, 목수도, 열쇠공도, 재단공도 도금사도 있었다. (···) 그들은 모두 열심히 일을 해서, 꼬뻬이까 동전 하나라도 더 벌려고 했다. 작업의 주문은 도시에서 얻어왔다. 돈은 주조된 자유였다. 그래서 자유를 완전히 박탈당한 사람들에게 돈은 열 배나 더 귀중한 것이었다. 만일 돈이 주머니 속에서 짤랑짤랑 소리를 내기만 해도, 비록 그것을 쓸 수는 없지만, 벌써 반 이상이나 위로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돈은 언제 어디서나 쓸 수 있었으며, 더욱이 금단의 열매는 두 배나 달콤한 법이었다. 감옥에서도 술을 구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파이프 담배도 아주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었지만 모두들 그것을 피우고 있었다. 돈과 담배는 괴혈병과 그 밖의 다른 질병으로부터 죄수들을 구해주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