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신뢰가 돈인 이유를 묻는다면
상태바
[칼럼] 신뢰가 돈인 이유를 묻는다면
  • 송하식 전 국방일보 편집인
  • 승인 2020.01.06 07: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송하식 국방일보 편집인.
송하식 국방일보 편집인.

바람·여자·돌이 많아 삼다도(三多島)라 불리는 제주도 전통가옥에는 대문이 없다. 대신 정낭이란 게 있어, 집 입구 양쪽에 구멍을 뚫은 돌을 세우고 나무를 가로 걸쳐놓았다.

정낭 하나가 걸려 있으면 집주인이 잠시 집을 비운 동안에 가축이 집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조치한 것이다. 두 개면 집주인이 이웃 마을에 간 것이고, 셋이면 집주인이 출타 중으로 며칠 지나서야 돌아온다는 표시다.

예로부터 제주도에는 도둑·거지·대문이 없다고 한다.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도 있겠지만, 척박한 자연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근검·절약·상부상조를 미덕으로 삼아서 도적질하지도, 구걸하지도 않고 대문도 없이 살았다. 이처럼 서로 믿고 의지하는 삶은 양적으로는 비록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라고 하더라도 질적으로는 만족할만한 것이다.

좀 더 범위를 넓혀서 대한민국에는 강·절도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대문뿐만 아니라 담을 높이 세울 필요가 없고, ·절도를 방비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각종 기회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치안유지를 위해 경찰병력도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강·절도범을 가둬두는 교정시설도 감축할 수 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마음놓고 생업에 전념할 수 있어 경제적 효율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

이제 우리 주변을 둘러보자. 지금 우리 사회는 신뢰의 위기를 맞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검찰 수사를 불신하고, 각종 민생법안은 표류중이다.

대기업 그룹 핵심임원들은 검찰에 불려가 기업경영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보듯, 정치현안 등에 대해 국론은 극심한 분열상을 보이고 있다. 광화문은 보수와 진보로 갈라져 집회·시위와 함께 얼룩져 사회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외출할 때 문단속을 하고, 그도 모자라서 마치 집안에 사람이 있는 것처럼 등불을 켜거나 TV를 틀어놓는다. 이 모든 현상은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불신은 막대한 기회비용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이를 뒤집어 얘기하면, 신뢰는 경쟁력이라고 할 수 있다. 미래학자 프란시스 후쿠야마 존스홉킨스대학 교수는 일찍이 그의 저서 트러스트(Trust, 1995)에서 신뢰는 사회적 덕목일뿐더러 번영의 창조력이라고 강조했다.

신뢰야말로 국가경쟁력의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그는 독일과 일본을 ()신뢰사회라고 평가했고, 중국·프랑스·이탈리아·한국을 ()신뢰사회로 꼽았다.

그의 지적이 옳은 것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남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실천으로 입증해야 한다. 요즘 세태를 보면서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탈규제·반부패·기술개발·인프라 확충 등도 중요하겠지만, 질적으로는 신뢰회복이 급선무라는 생각을 더 굳히게 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