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도박벽을 고친 도스토옙스키의 아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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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도박벽을 고친 도스토옙스키의 아내 (3)
  • 이정식 작가
  • 승인 2020.01.03 09: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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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가 소설 '도박꾼' (1866년)을 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알론킨 하우스(그림)
도스토옙스키가 소설 '도박꾼' (1866년)을 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알론킨 하우스(그림)

마침내 도박을 끊다

도박장에 가서 다시 한번 운을 시험해 보고 오라는 안나의 제안을 도스토옙스키는 기분좋게 받아들였다.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도박장에 한번 가보고픈 마음이 있었을 테지만, 돈을 관리하고 있던 젊은 아내 안나에게 “도박장에 갔다 오게 돈 좀 달라”는 말은 차마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안나의 회고는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내 제안을 남편은 너무도 마음에 들어하며 거부하지 않았다. 그는 120탈러를 들고 돈을 잃는 경우 내가 집에 돌아오는 비용을 보내준다는 단서 하에 비스바덴으로 떠났다. 거기서 그는 일주일간 머물렀다. 내가 예상했던 대로 결과는 비참했다. 여행 비용을 포함하여 표도르 미하일로비치는 180탈러를 써버렸다. 그것은 당시의 우리에게는 매우 큰 액수였다. 표도르 미하일로비치는 나와 아기, 우리 가족에게서 돈을 앗아간 자신을 질책했다. 이 일주일 동안 그가 겪은 극심한 괴로움은 그로 하여금 다시는 룰렛 도박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도록 만들었다. 남편이 1871년 4월 28일 내게 보낸 편지엔 이런 내용이 있었다. “이제 나는 결심했소. 거의 10년 동안 (아니, ‘형이 죽은 후 내가 빚에 짓눌리게 되면서부터 라고 하는 게 낫겠군) 나는 괴롭혀 온 혐오스러운 환상이 사라졌소. 나는 그 동안 돈을 따는 걸 꿈꾸어 왔소. 심각하고도 무섭도록 말이오. 그런데 이제 모든게 끝났소!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었소. 내가 손을 끊었다면 믿겠소. 아냐?(*아냐는 부인 안나의 애칭) 나는 도박에 묶여있었소. 이제 나는 종종 그랬듯이 도박하는 상상을 하느라 밤을 새는 일 없이 일을 생각할 것이오.”

도스토옙스키는 빚과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박장에서 일확천금을 노렸지만, 도박장에서 그런 기적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도박에서 손을 끊겠다’는 남편의 편지를 받고도 안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이전에도 몇 번이나 그런 약속을 하고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적은 마침내 일어났다. 도스토옙스키는 이후 도박장에 가지 않았다.

안나가 쓴 회고록만 보면 안나가 언제나 도박에 매우 관대했던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자료들을 보면 안나 역시 때대로 남편에게 도박장에 가지 말도록 말리기도 했고, 애원도 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남편과 그 문제를 놓고 정면으로 대립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안나는 언제나 반대하는 것이 좋은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해 오히려 이따금 정반대의 방법을 사용했고 그것이 결국 도스토옙스키로 하여금 도박에서 손을 떼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가 마지막으로 도박장에 간 것은 1871년 봄 비스바덴에서였다. 그러니까 러시아로 귀국하기 몇 달 전까지 유럽체류 4년 동안 때때로 도박장엘 드나들었던 것이다. 도스토옙스키는 그해 여름(7월) 귀국 후 몇 차례 유럽에 갔지만 도박장에는 다시 들르지 않았다.

사실 도스토옙스키가 귀국한 다음해인 1872년, 독일 연방 당국의 칙령에 의해 독일 영토 내의 모든 도박장이 폐쇄되었다. 도박장은 결국 모나코 왕국으로 옮겨갔다. 도스토옙스키가 도박에 생각이 있었다면 모나코까지 갈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도스토옙스키는 비스바덴에서 마지막으로 도박을 하고 돌아온 후 활기차고 안정된 모습을 보였다. 그때부터 그는 소설의 집필에 더욱 매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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