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식민지하의 비참한 조선 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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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식민지하의 비참한 조선 민족
  • 이정식 / 언론인
  • 승인 2013.12.06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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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유정>의 무대 '바이칼' (3)

애욕을 차디찬 이지의 입김으로 …….

▲ 자작나무 숲의 가을 (시베리아)

정임과의 관계에 대한 오해와 소문으로 교장직을 떠나고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어 시베리아로 떠날 결심을 한 최석은 시베리아로 가기에 앞서 도쿄로 가 입원중이던 정임을 만난다.
정임에게는 어디 여행을 떠나기 전에 들른 것이라고 말하였지만, 정임은 ‘학교를 사직했다’는 최석의 말에서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채고 최석의 가슴에 얼굴을 대고 흐느껴 울었다.
병원에서 나온 최석은 다음날 정임에게 온다 간다는 말도 없이 떠나기로 마음 먹고 마지막 작별의 편지를 쓴다.

‘내 딸아!
나는 네 일기를 보았다. 네가 나를 얼마나 사모해 주는지를 잘 알았다. 그리고 아까 네가 울면서 내 가슴에 안기던 정을 내가 안다. 부모도 없는 너, 병든 너의 그 형언할 수 없는 적막을 내가 안다.
그러나 정임아. 나는 네 사모함을 받을 수가 없는 사람이다. 네가 나를 사모하느니만큼 나도 너를 …….’

여기까지 쓰고 최석은 붓을 정지하였다. 그는 망상을 떨어 버리려고 문을 열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 사이에 병원에 있던 정임이 여관을 찾아왔다.
손님이 왔다는 전갈을 받고 ‘누구일까, 혹시?’하고 방문을 여니 역시 정임이었다.
최석은 N에게 쓴 편지에서 그 때의 감정을 이렇게 적고 있다.

정임은 내가 쓰다가 둔 편지를 읽고 있다가 벌떡 일어나 내게 달려들어 안겨 버렸소. 나는 얼빠진 듯이 정임이 하라는 대로 내버려두었소.
그 편지는 부치려고 쓴 것도 아닌데 그 편지를 정임이 본 것이 안 되었다고 생각하였소.
형! 나를 책망하시오. 심히 부끄러운 말이지마는 나는 정임을 힘껏 껴안아 주고 싶었소.
나는 몇 번이나 정임의 등을 굽어 보면서 내 팔에 힘을 넣으려고 하였소.
정임은 심히 귀여웠소. 정임이 그처럼 나를 사모하는 것이 심히 기뻤소. 나는 감정이 재우쳐서 눈이 안 보이고 정신이 몽롱하여짐을 깨달았소. 나는 아프고 쓰린 듯한 기쁨을 깨달았소.
영어로 엑스타시라든지, 한문으로 무아의 경지란 이런 것이 아닌가 하였소. 나는 사십 평생 이러한 경험을 처음 한 것이오.
형! 형이 아시다시피 나는 내 아내 이외에 젊은 여성에게 이렇게 안겨 본 일이 없소. 물론 안아 본 일도 없소.
그러나 형! 나는 나를 눌렀소. 내 타오르는 애욕을 차디찬 이지의 입김으로 불어서 끄려고 애를 썼소.

최석은 ‘자기도 데리고 가 달라’는 정임의 애원을 뿌리치고 다음날 비행기와 배로 중국 대련으로 가서, 대련에서 기차를 타고 장춘을 거쳐 하얼빈으로 간다. 그는 하얼빈에서 예전에 만났던 적이 있는 조선 출신 소비에트군 육군 소장 R을 찾아 간다. R을 찾아가면서 그는 조선 사람들이 조선 사람인 것을 숨기는 모습을 보고 일제 식민지하에서의 조선민족의 비참한 처지에 새삼 비통함을 느꼈다.

나는 하얼빈에 그 사람을 찾아가는 것이오. 그 사람을 찾아야 아라사에 들어갈 여행권을 얻을 것이오, 여행권을 얻어야 내가 평소에 이상하게도 그리워하던 바이칼 호를 볼 것이오.
하얼빈에 내린 것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석양이었소.
나는 안중근이 이등박문(伊藤博文, 이토 히로부미)을 쏜 곳이 어딘가 하고 벌판과 같이 넓은 플랫폼에 내렸소. 과연 국제도시라 서양 사람, 중국 사람, 일본 사람이 각기 제 말로 지껄이오. 아아, 조선 사람도 있을 것이오마는 다들 양복을 입거나 청복을 입거나 하고 또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말도 잘하지 아니하여 아무쪼록 조선 사람인 것을 표시하지 아니하는 판이라 그 골격과 표정을 살피기 전에는 어느 것이 조선 사람인지 알 길이 없소.
아마 허름하게 차리고 기운 없이, 비창한 빛을 띠고 사람의 눈을 슬슬 피하는 저 순하게 생긴 사람들이 조선 사람이겠지요. 언제나 한 번 가는 곳마다 동양이든지 서양이든지 ‘나는 조선 사람이오!’ 하고 뽐내고 다닐 날이 있을까 하면 눈물이 나오. 더구나 하얼빈과 같은 각색 인종이 모여서 생존 경쟁을 하는 마당에 서서 이런 비감이 간절하오.
아아, 이 불쌍한 유랑의 무리 중에 나도 하나를 더 보태는가 하면 눈물을 씻지 아니할 수 없었소.

이광수가 이 소설을 조선일보에 연재한 때는 1933년. 그가 아직 조선의 혼을 가슴에 품고 있을 때였던 가 보다. 일제 식민지 하에서 검열이 만만치 않았을 터인데 이러한 대목이 그대로 실렸을까하는 의문도 들지만 뒤에 새로 만들어 덧붙였을 것 같지는 않다. 다시 소설로 돌아가자.

▲ 알혼섬에서 본 바이칼 호수 주변의 산. 9월 하순인데 벌써 산 위에 눈이 하얗게 쌓여있다.(촬영 2013.9.25)

최석은 마침내 러시아 병정들의 도움으로 커다란

최석은 마침내 러시아 병정들의 도움으로 커다란 저택에 사는 R을 만나 그로부터 러시아 여행권과 소개장을 얻는다. R에게는 바이칼로 가려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고 N에게 말한다.

‘나는 피곤한 몸을 좀 정양하고 싶다. 나는 내가 평소에 즐겨하는 바이칼 호반에서 눈과 얼음의 한겨울을 지내고 싶다.’는 것을 여행의 이유로 삼았소.
R는 나의 초췌한 모양을 짐작하고 내 핑계를 그럴듯하게 아는 모양이었소. 그리고 나더러, ‘이왕 정양하려거든 카프카 지방으로 가거라. 거기는 기후 풍경도 좋고 또 요양원의 설비도 있다.’는 것을 말하였소.
나는 톨스토이의 소설에서, 기타의 여행기 등 속에서 이 지방에 관한 말을 못 들은 것이 아니나 지금 내 처지에는 그런 따뜻하고 경치 좋은 지방을 가릴 여유도 없고 또 그러한 지방보다도 눈과 얼음과 바람의 시베리아의 겨울이 합당한 듯하였소.

(4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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