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근호 일상칼럼】 위엄이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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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근호 일상칼럼】 위엄이 있는 책.
  • 조근호 변호사( 대전지검 전 검사장.부산고검 전 검사장 전법무연수원장) |
  • 승인 2019.07.15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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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근호 변호사( 대전지검 전 검사장.부산고검 전 검사장 전법무연수원장) ​
​조근호 변호사( 대전지검 전 검사장.부산고검 전 검사장 전법무연수원장) ​

 

지난주 소포 하나가 회사로 배달되었습니다. 제법 큰 크기의 소포라 무엇인지 궁금하여 열어 보았더니 첫인상에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크기의 책입니다. 표지 사이즈도 보통 책의 1.5배이고 종이 재질도 모두 고급 종이이며 페이지도 612페이지나 되어 부피도 엄청나게 큰 책입니다.

그런데 책의 크기와 부피가 문제가 아니라 책의 제목이 정말 특이하였습니다. [수학과 예술]입니다. 수학도 어렵고 예술도 어려운데 이 둘을 합하여 논하였으니 이 책은 얼마나 어려운 책일까요? 미국 SVA 대학교의 린 캠웰 교수가 쓴 책입니다. 저는 이 책을 보고 이런 책을 번역하여 출판한 출판사의 용기가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책을 선물한 그 출판사의 대주주인 선배에게 전화를 하였습니다. "선배님 대단하십니다. 이런 책을 번역하여 출판하시다니요. 수익성은 생각하지 않으셨을 텐데, 수익과 무관하게 이런 책이 번역 출판되는 것만으로도 한국 지식 산업계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맞아요. 이 책은 수익과 무관해요. 이 책을 출간하고 가장 먼저 떠오른 얼굴이 조 대표에요. 책을 좋아하니까요. 기회 있을 때 한번 읽어봐요."

저는 그 전화를 끝내고 찬찬히 책을 넘겨 보았습니다. 인류 문명사에서 수학과 예술이 만난 모든 장면을 다 집어넣은 것 같았습니다. “기하학을 모르는 자, 이 문을 들어올 수 없다.”는 그리스 플라톤 아카데미 입구에 적힌 글을 시작으로 이 책은 흥미진진한 지적 여행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수학과 예술을 사랑한 인류의 지적 경험을 총망라한 경이로운 책' '지식인의 서재에 반드시 꽂혀 있어야 할 금세기 최고의 교과서' '인류 최고의 발명품인 수학과 예술, 그 둘의 위대한 역사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읽어라 그리고 감동하라' 등이 이 책에 쏟아진 서평이라고 언론은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1977년 대학교 1학년 때 학생회관을 다니며 책을 팔던 서적 외판원의 꼬임에 빠져 없는 돈에 어머님을 졸라 세계문학전집 50권과 세계사상전집 50권 등 총 100권을 샀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책이 모두 없어져 어느 출판사인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 책을 집에 들여놓고 가슴 벅찼던 그 기억만은 잊을 수 없습니다.

책은 원래 읽기보다 소장하는데 더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어느 누구도 산 책을 다 읽어본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책에 대한 욕심은 누구에게나 끝이 없나 봅니다. 서재에 꽂힌 책을 보면 살아오면서 관심이 어떻게 변천하였는지를 알게 해줍니다. 그런데 그 많은 책 중에 유독 가슴을 뿌듯하게 해주는 책이 있습니다.

지난주 선물 받은 [수학과 예술]이 바로 그런 책이었습니다. 얼핏 내용을 훑어보아도 제가 다 읽어 낼 수준의 책이 아닙니다. 수많은 수식이 곁들여진 상당히 수준 높은 책입니다. 그러나 이런 책 한 권쯤 서재에 꽂혀 있다면 가벼운 수필집 100권보다 더 묵직한 메시지를 던져 줄 것입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전집을 전설적으로 잘 팔았다는 지금은 대기업인이 되신 분의 말씀을 들어보면 일리가 있습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그 옛날 상상도 못 할 금액이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사장님 자녀분을 일류 대학에 보내고 싶으시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전집이 집에 있어 늘 보고 자란 아이와 고급 가구와 고급 술병만 보고 자란 아이 중에 누가 일류 대학교에 갈 확률이 높을까요?' 대부분의 사장님들은 읽지도 못하는 영어로 된 이 전집을 두말없이 샀지요."

이 이야기는 판매 전술이었겠지만 실제로도 맞는 말이었을 것입니다. 집에 수많은 책이 있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무엇이 달라도 달았을 것입니다.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립도서관이 잘 구비된 나라에서 자란 아이들과 그렇지 못한 나라에서 자란 아이들은 다를 것입니다.

몇 년 전 이탈리아를 방문하였다가 로마 근교 티볼리에 있는 로마 14대 황제 하드리아누스의 별궁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여러 가지 건축물의 흔적이 남아있었습니다. 그중 관심을 끈 것은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도서관이었습니다. 그리스어 도서관(Biblioteca Greco)와 라틴어 도서관(Biblioteca Latino) 건물이 따로 있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드리아누스(재위 기간 서기 117년 - 138년)가 열렬한 그리스 애호가라 하더라도 각 언어별로 도서관을 만들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로마의 지적 수준을 알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하드리아누스는 얼마나 소장하고 싶은 책이 많았으면 두 개의 도서관을 만들었을까요. 요즘 식으로 하면 한국어 서재와 영어 서재를 별도로 집에 두었다는 말이지요.

저는 [수학과 예술]을 서재의 어느 칸에 넣을까 고민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책과 어깨를 나란히 할 위엄을 갖춘 책은 거의 없었습니다. 제 서재에는 미술관 도록을 제외하고는 강신주 선생님의 1,492페이지짜리 [철학 vs 철학] 정도가 비슷한 위엄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사람만 위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책에도 위엄이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느끼게 되었습니다. 읽지 않더라도 그저 서재에 꽂아 두는 것만으로도 그 서재의 무게를 더 해주는 [위엄 있는 책]. 이런 책들이 저의 서재에 많아지길 기원합니다.

여러분의 서재에는 어떤 책이 위엄을 드러내고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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