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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태 칼럼】전화위복:세종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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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태 칼럼】전화위복

김형태 대기자[한남대학교 전 총장] | 기사입력 2019/06/23 [12:10]

【김형태 칼럼】전화위복

김형태 대기자[한남대학교 전 총장] | 입력 : 2019/06/23 [12:10]
김형태 세종경제신문대기자(한남대학교 전총장)||
김형태 세종경제신문대기자(한남대학교 전총장)||

 

순풍에 돛단 듯이 만사가 형통하면 얼마나 좋겠나.

하지만 세상이 뜻대로 될 수는 없다. 금강산도 멀리 보니까 아름답지, 가까이 가보니 쇠똥도 있고 자갈도 았더란 말이 있다.

성경에서 요셉을 마워하는 자의 학대(창세기 49장23), 노예신분, 언어문화의 차이등 장애물이 많았다. 그러나 모두 이겨내고 외국에서 총리가 되었더. 

인생장애물경기의 숭리자들을 찾아보자.

토스카니니는 소년시절부터 심한 근시로 고생했다.

19세부터는 어느 오케스트라의 첼로 연주자로 있었는데 근시로 인해 악볼르 볼수 없어 늘 연습전에 악보전체를 외웠다.

한번은 중요한 연주를 앞둔 며칠전 지휘자가  않아누워 대책이 없을 떼  곡전체를 외우고있던 토스카리니가 지휘자로 뽑혔다.

이를 계기로 세계적인 대 지휘자가 될수 있었다. 전화위복의 샘플이 된 것이다.

미국 메릴랜드주의 젊은 농부 데이비는 콜로라도에 가서 굉장히 큰 금광을 발견했다.

친구들과 합작해 채굴에  나섰다. 하지만 투자액을 어느 정도 채울 즈음에 갑자기 금맥이 끊겼다.필사적으로 파보았으나 허사였다.

  그는 단념한 채 채굴장비를 헐값에 넘겼다.

그런데 고물상이 그 장비를 갖고 다시 단층 광맥을 정밀조사해보니 1m 옆에 있는 새로운 금맥을 찾아 수백만달러의 재산을 얻었다.

데이비는 마직막 단계에서 끈기 부족으로 부자의 꿈을 놓쳤다.데이비는 그러나 이 끄라린 경험을 살려 뒤에 보험외판원으로 크게 성공했다.

거절당할 때마다 ‘난 의지와 끈기가 약해 1m앞의 광맥을 놓쳤다’고 외쳤다고 한다.

그래서 노력한 끝에 한달에 100만 달러 이상의 보험을 판매하는데 세일즈맨이 되었다.세종지마의 샘플이다.

한국인 최초인 맹인박사인 강영우박사는 실명과 역경을 극복하고 한 때 미국 정부의 최고위직에 올라 대통령을 보좌하기도 했다.

역경을 딛고 일어선  인간승리의 표본이었다. 그는 ‘실명은 나에 장애가 아니라 하나님께 받은 사명수행의 도구가 되었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장애물이 아니라 장애물에 대처하는 태도다. 좌절할 수밖에 없었을 때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다시 일어나는 태도가 중요하다.

이런 사람에게는 장애가  약간불편 할 뿐 불행이 되지 않는다. 좀더 시간이 걸린 뿐 불가능은 아니다.

티무르가 젊었을 때 경험한 이야기이다(카우만의 ‘젊은이를 위한 명상’에서). 티무르가 한번은 적들로부터 도망처 허물이진 건물 안으로 피신해 절망적인 상태로 앉아있었다.

그 때 자기 몸보다 큰 곡식 낟알을 높은  벽으로 잘어울리는 개미의 역사를 본 것이다. 개미는 그 곡식알을 69번이나 땅에 떨어 뜨렸다.

그러나 개미는 실망하지 않고 그일을 계속했다. 마침내 70번째에 그일을 성공시켰다. 그날 본 개미의 집념을 잊을 수가 없었다.


성공하여 큰 업적을 남긴 리더들은 건강이나 재물이나, 인간관계등에서  힘든 장애물 경기를 겪은 자들이 많다.

장애물을 변질된 축복으로 우리 앞에 나카날 때가 많다. 쇠의 담근질처럼 시련과 고통을 통해 더 강인한 사람으로 바뀐 경우가 많다.

그래서 구름이 빽빽하여도 구름위에 빛나는 태양을 볼수 있어야한다. 태양을 향해 서있는 사람은 그림자를 볼수 없다.

어니 젤린스키는 ‘걱정의 40%는  절대현실에서 나타나지 않는다. 걱정의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관한 것이다. 걱정의 4%는  우리힘으로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걱정의 4%는 위락 바꿔 놓은 수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필자 김형태는 누구.

충남 논산 출신으로 충청권을 대표하는 교육자로 꼽힌다.

충청권의 사립명문인 한남대영문과를 졸업하고, 이 대학에서 석.박사,그리고 충남 대학교 대학원 교육학 박사를 거치며 1981년부터 대학 교단에선 뒤 한남대 기획실장, 대학원장, 인재개발원장, 평생교육원장과 부총장,한국상담학회회장을 거쳤다.

직선제를 통해 2008년부터 2016년까지 한남대 총장을 지냈다.제14회 한국장로문학상 수필부문 장로문학상등 다수의 상과 함께 월간 디플로머시 임덕규회장,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등과 친분이 두텁다.

총장재직시 대학내에 6.25 참전 16 개국 공원조성과 함께 해당국기를 게양하는 사업으로 널리 알려졌다. 개교이래 최고의 한남인으로 동문.재학생로 꼽히기도 했다

이어 지금은 한국교육자선교회 중앙회장,아시아태평양기독교학교연맹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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