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용 뉴스창】김원웅,"부모님 모두 김원봉의 의열단원이었다"며 조선의열단 100주년 추진위 대표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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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용 뉴스창】김원웅,"부모님 모두 김원봉의 의열단원이었다"며 조선의열단 100주년 추진위 대표맡아
  • 신수용 대기자
  • 승인 2019.06.08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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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은 무장운동계열과 의병계열이 있었다.  영화 '암살'에서 무장투쟁계열은보듯 조직내 폭탄반이 있었다. 무장투쟁계열은 조선의열단으로 독립군과 광복군의 전신이다. 여기에는 김상옥.이육사,정율성과 단재신채호, 우리 부모님이 이끌었다. 김상옥.이육사는 아다시피 시인이었고 정율성은 음악가로 중국의 3대 음악이라는 인민해방군사를 작사.작곡한 분이다. 

어머니(독립운동가 전월선)는 16세에 조선의열단에 가담해 21세에 아버지(독립운동가 김근수)를 만나 4년 뒤에 내가 태어났다.  1940년 김원봉과 백범 김구선생이 만나 저선의열단의 후신인 광복군을  설립한 것이다."<세종경제신문 5월 26일 자 신수용의 명사대담에서> 

[세종경제=신수용 대기자]=대전 출신으로 지난 7일 취임한  김원웅 신임 광복회장(국회의원 3선. 국회통일외교통상위원장)이  ​ 민간차원에서 광복군의  전신인 조선의열단  100주년 추진위원회의 공동추진위원장을 맡는다. 또 한사람은 함세웅 신부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일 현충일 추념사에서 '약산 김원봉'의 공적을 재조명하겠다는 취지로 언급하자, 보수정치권과 진보 정치권간에 이념갈등을 빚는 가운데 약산 김원봉이  수장이던  조선의열단이 창설 100주년을 맞아 민간차원에서 조직되고 이를 김 회장이 이끌계획인 것이다. 

김원웅 제 21대 광복회장[사진= 김원웅 광복회장 제공]
김원웅 제 21대 광복회장[사진= 김원웅 광복회장 제공]

조선의열단은 1919년 11월 중국 만주 길림성에서 약산 김원봉이 단장(의백·義伯)으로 활동한 대표적인 항일독립운동 단체다. 의열단은 1920년대 일제 요인 암살과 식민통치기관 파괴 등 각종 의거를 이끈 주요 비밀결사체다.

대표적인 박재혁의 부산경찰서 폭탄투척 의거,  최수봉의 밀양경찰서 폭탄투척 의거, 김상옥의 종로경찰서 폭탄투척 의거, 김지섭의 동경 니주바시 폭탄투척 의거, 나석주의 동양척식회사 및 조선식산은행 폭탄투척 의거 등은 익히 알려진 의열단의 활동들이다. 

김 신임 광복회장은 8일 <세종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조선의열단은 항일 무장단체로 민중 혁명인 동학란에 이어 외세의 행동으로 저항한 독립군의 전신"이라며 " 저에게는 아버지, 어머니 두 분이 김상옥선생, 이육사선생등과 함께 약산(김원봉)이 이끄는 조선의열단에서 활동한 뒤 광복에서 항일운동을 벌였던 만큼 남다르다"고 밝혔다.

정부는 민간 차원에서 추진되는 창단 100주년 기념사업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따라  '조선의열단 창단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추진위)가 오는 27일 서울 여의도 광복회관에서 발족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할 예정이다. 

 

김원웅 제 21대 광복회장[사진= 김원웅 광복회장 제공]
김원웅 제 21대 광복회장[사진= 김원웅 광복회장 제공]

 

조선의열단기념사업회, 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항단연) 등  유관 단체들은 지난해부터 올해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에 맞춰 의열단 창단 100주년 기념 문제를 정부 측에 건의해왔다.

정부는 그러나 의열단 의백(단장)이었던  김원봉의 독립유공은 인정하면서도 북한 공산 정권수립에 기여한 이념 문제가 정치권에서 불거지면서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설립 의견에 제동이 걸렸다.

단체들은 정부에 100주념 기념사업 예산 지원을 요청했으나, 올해 보훈처 민간 보조 예산에서 한 푼도 배정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의열단의 활약이 독립운동사에 뚜렷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음에도 정부가 오직 '김원봉'과 관련된 정쟁에만 얽매여 잘 알려지지 않은 의열단원들에 대한 선양은 외면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김원웅 제 21대 광복회장이 지난달 24일 세종경제신문과 대담을 갖고 있다[사진= 세종경제신문 DB]
김원웅 제 21대 광복회장이 지난달 24일 세종경제신문과 대담을 갖고 있다[사진= 세종경제신문 DB]

한 언론은 정부에서도 최근 의열단 창단 100주년 기념사업을 지원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검토를 하는 등 기류가 다시 긍정적으로 변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에 앞서 지난 6일 현충일 추념사에서 "광복군에는 무정부주의 세력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이어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돼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역량을 집결했다"며 김원봉을 적극 조명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등 보수정당은 문 대통령의 이같은 언급에 강한 반발과 함께 약산 김원봉에 대한 평가를 놓고 연일  공세를 취하고 있다.

▶약전 김원봉 누구인가[출처;두산백과].

1898년 경남 밀양(密陽)에서 출생하였다. 호는 약산(若山)이다. 1918년 난징[南京]의 진링[金陵]대학에 입학하였고, 1919년 12월 의열단을 조직하여 국내의 일제 수탈 기관 파괴, 요인암살 등 무정부주의적 투쟁을 하였다.

약산 김원봉 조선의열단 단장[사진=네이버 공식카페켑처]
약산 김원봉 조선의열단 단장[사진=네이버 공식카페켑처]

1925년 황푸군관학교를 졸업하였으며, 1935년 조선민족혁명당을 지도하면서 중국 관내지역 민족해방운동을 주도하였다.

또한 중국국민당의 동의를 얻어 ‘조선의용대’라는 군사조직을 편성하기도 하였다. 1942년 광복군 부사령관에 취임하였으며, 1944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무위원 및 군무부장을 지내다가 8·15 광복 후 귀국하였다.

1948년 남북협상 때 월북하여 그 해 8월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이 되었고 9월 국가검열상에 올랐다.

그 후 1952년 5월 노동상, 1956년 당 중앙위원회 중앙위원, 1957년 9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역임하였으나, 1958년 11월 김일성(金日成) 비판을 제기한 옌안파[延安派] 제거작업 때 숙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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