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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근호의 일상칼럼]"오늘 저녁은 6시반부터 9시까지입니다":세종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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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근호의 일상칼럼]"오늘 저녁은 6시반부터 9시까지입니다"

 조근호 변호사 | 기사입력 2019/05/27 [14:28]

[조근호의 일상칼럼]"오늘 저녁은 6시반부터 9시까지입니다"

 조근호 변호사 | 입력 : 2019/05/27 [14:28]
​조근호 변호사[대전지검 전 검사장. 부산고검 전 검사장. 법무연수원 전원장)​
​조근호 변호사[대전지검 전 검사장. 부산고검 전 검사장. 법무연수원 전원장)​

 

계절은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아니 계절은 늘 우리에게 시작과 끝을 가르쳐 줍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는 이 엄중한 사실을 1년에 4번 정확하게 알려 줍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고요. 한번 이야기 나눠 볼까요.

하루에도 몇 차례 약속을 알리는 문자가 띵동하며 메시지나 카톡으로 전해집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 약속 문자에는 약속 시작 시간은 적혀있지만 약속이 끝나는 시간은 적혀있지 않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공적인 행사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지만 사적인 약속인 경우에는 끝나는 시간을 적은 약속이 거의 없습니다.

아주 오래전 제가 청와대 비서실에 근무할 때 옆방의 선배 비서관이 모임 안내 문자를 돌리시면서 이렇게 보내왔습니다. "저녁 모임 안내, 시작 6시 반 종료 9시. 그 이후에는 다른 일정을 잡아도 됩니다." 저는 몇몇이 만나 저녁 먹는 모임에 종료 시간을 기재한 것을 처음 보았습니다.

너무 신기해 그 후로도 그 선배님이 보내시는 약속 문자를 유심히 보았습니다. 모두 종료 시간이 적혀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무척 어색하고 약간은 야박해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저녁 먹는데 무슨 종료 시간이 있단 말인가. 기분 좋으면 2차도 가고 3차도 갈 수 있는 것 아닌가? 사람이 너무 정이 없게 끝나는 시간을 정하다니.'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후 오랜 시간 사회생활을 하면서 종료 시간이 없는 저녁 시간이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체감하며 살고 있습니다. 언제 끝날지 알지 못하니 서로가 지칠 때까지 대화를 나누고 화젯거리가 바닥이 나면 일어섭니다.

특히 부부동반 모임을 가면 이런 현상이 두드러집니다. 대부분 남자와 여자가 따로 앉지요. 두어 시간 지나면 남자들은 화젯거리가 끝나 멀뚱멀뚱하고 있는데 여자들은 이제 시작인 것처럼 화제 꽃이 만발하여 언제 끝이 날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남자들은 억지로 신사도를 발휘하여 30-40분 기다려 주다가 더는 참지 못하고 그중 용감한 친구 하나가 여자들 자리를 향해 "이제 갑시다" 하고 외칩니다. 여자들은 자신들의 남편을 향해 흘낏 눈길을 줍니다. '한참 재미있는데 왜 가자고 하는 거예요.'라는 뜻입니다. 이럴 때마다 끝나는 시간을 정하였더라면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 주인공을 지난 주말 어느 워크숍에 참석하여 만났습니다. 옆자리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종료 시간이 있는 약속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건넸습니다. 같이 식사를 하던 다른 분들이 매우 신기해하였습니다. 제가 처음 받은 느낌과 같았을 것입니다.

그분은 통계청장을 역임하시고 지금 서울대 교수와 김앤장 고문으로 맹활약하고 계신 오종남 선배님이십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한가지 이야기를 덧붙였습니다.

"선배님. 약속에만 종료 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각종 모임에도 해산 시기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각종 모임에 참여하게 됩니다. 등산 모임, 골프 모임, 공부 모임 등등 갖가지 친목 단체가 있습니다. 처음 몇 년은 모두 의욕적으로 참가하여 모임이 활성화됩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면 시들해집니다.

특히 모임의 규모가 클수록 회원들이 서로 알아가는 시간 동안은 자주 나오지만 개인적인 인연을 맺어 서로 사적으로 만나는 수준에 이르면 더는 정기 모임에는 관심이 없고 소수 친한 사람끼리의 모임만 활성화됩니다. 점점 참석률이 낮아지고 회장 총무만 애를 탑니다. 각종 아이디어를 내지만 내리막 참석률을 회복하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닙니다. 점점 의무감으로 모임에 참석하게 됩니다.

제 생각은 이런 모임에도 존속 시기를 둘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우리 모임은 존속기간이 5년입니다. 또는 10년입니다. 그 기간이 지나면 해산합니다. 그리고 회원들이 원할 경우에는 갱신할 수 있습니다. 그때 탈퇴하고 싶은 회원은 탈퇴하여 새로운 모임으로 거듭납니다.' 모임을 시작할 때 이렇게 고지를 하자는 것입니다.

인생에도 생로병사가 있듯이 모임에도 생로병사가 있는 것 같습니다. '병'이나 '사' 단계에 있는 모임을 질질 끌고 가기보다는 사망 선고를 하고 필요할 경우 부활시키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지금도 의리상 참석하는 모임이 더러 있습니다."

오종남 선배님은 전적으로 공감을 표시해 주었습니다. 끝이 있다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계절이 끝이 있어 아름다운 것처럼 말입니다.

검찰에 있을 때는 1년이나 2년마다 하는 인사이동이 번잡하였습니다. 정든 분들과 헤어져야 하고 이사도 하여야 하고 불편한 것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늘 새롭게 시작하였습니다. 다소 미흡하게 일을 하였던 보직은 흠이 더 커지기 전에 떠나니 좋았고, 새로운 보직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새롭게 업무에 임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2011년부터 계속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재탄생 Reborn'이 없는 것입니다. 인위적으로 재탄생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새해입니다. 새해가 시작되면 검찰에서 근무처를 옮긴 것처럼, 또는 모임을 해산하고 재탄생한 것처럼 활기차게 시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시작과 끝'의 의미를 떠나간 겨울과 이제 우리 곁에 찾아온 봄을 통해 다시금 되새기게 됩니다. 인생은 끝이 있어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힘든 시절 저의 좌우명은 이것이었습니다. "세상 모든 일에는 끝이 있다." 슬픔도 고통도 가난도 모두가 끝이 있다고 생각하니 위안이 되고 힘이 생겼습니다. 그때 저에게 끝났으면 하는 일은 모두 나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60년을 살아보니 나쁜 일만 끝이 있는 것은 아니더군요. 좋은 일도 끝이 있었습니다. 기쁨도 쾌락도 풍요도 모두 끝이 있습니다. 그 끝을 미리 예견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간단한 저녁 약속의 끝날 시간을 정하고, 영원할 것 같은 모임의 해산 시기를 예정하는 일은 어쩌면 죽음을 연습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필자 조근호

1959년 충남 서천출생. 대일고. 서울대 법대 1981년 사시 21회 합격. 서울 춘천.대구지검 검사 서울지검 형사 2부장. 서울지검 형사 5부장, 대검 검찰 연구관, 대구지검 2차장검사. 대검법죄 정보과장,. 대검 범죄정보기획관. 대검 공판부장, 사법연수원 부원장 대전지검 검사장. 부산 고검 검사장. 법무연수원장, 법무벌인 행복마루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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