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근호의 일상칼럼]인생 공부와 루첼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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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근호의 일상칼럼]인생 공부와 루첼라이.
  • 조근호 변호사(전 대전지검장.부산고검장)
  • 승인 2019.05.20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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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근호 변호사( 대전지검 전 검사장.부산고검 전 검사장. 법무연수원 전 원장)
조근호 변호사( 대전지검 전 검사장.부산고검 전 검사장. 법무연수원 전 원장)

 

지난주 지인들에게 보낸 글이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공부의 방향성', '공부계획', '결정적 지식' 등 개념으로 어떻게 공부할 것인지 해법을 가르쳐 주었다 며 감사의 답이 왔습니다. 이 반응을 보고 많은 분들이 공부에 대한 갈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의 경우는 2011년 검찰을 떠난 뒤 부터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공부에는 언제나 스승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 스승은 강의를 통해 만나기도 하고 그가 쓴 책을 통해 만나기도 합니다.

저의 스승은 연세대학교 김상근 교수님이십니다.

검찰을 떠나고 보니 부딪치는 문제가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나는 삶을 제대로 살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처음으로 '[삶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검사로 살 때는 삶의 방향이 '정의 추구'로 정해져 있었고, 제가 할 일은 그 방향에 맞춰 빨리 달리는 것, '삶의 속도'뿐이었습니다.

그런데 퇴직하자 저에게는 많은 '삶의 방향'이 제시되었고, 저는 '변호사'라는 방향을 선택하였습니다.

그 후 1년이 지난 2012년 여름, 김상근 교수님의 '인문학이 밥 먹여 주나'라는 강의를 듣고 '제가 선택한 삶의 방향이 저에게 맞는 것인지', '제 속도가 최선인지'에 대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즉, 'How to live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 것입니다.

그 고민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어느 날 서점을 찾았습니다. 저는 우연히 제 고민과 똑같은 제목의 책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 멈춰 서버렸습니다. 그날의 감동을 적은 2012년 10월 8일 자 글의  한 대목입니다.

"그 책은 사라 베이크웰이 쓴 ‘How to live 어떻게 살 것인가.’ 입니다. 사라 베이크웰은 20년 전 부다페스트 헌책방에서 우연히 몽테뉴의 수상록 영어본을 만나 그 후 자발적으로 수상록의 노예가 됩니다. 수상록을 연구하여 몽테뉴의 삶과 사상을 재편집하여 쓴 책이 ‘How to live’입니다."

"선 채로 몇 페이지를 본다는 것이 수십 페이지가 되어 버렸고 그 순간부터 저 역시 ‘How to live’의 노예가 되어 버렸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을 통해 몽테뉴의 수상록을 알게 된 것에 감사하였고, 한편으로는 왜 이렇게 늦게 수상록을 알게 되었는지 후회스러웠습니다."

그 책을 단숨에 읽고는'[수상록'에 도전하였습니다. 당시에는 완역본이 동서 문화사에서 2007년 출간한 손우성 번역의 1,330페이지짜리가 유일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번역은 매끄럽지 못해 몇 번을 다시 읽었고 2012년 여름은 그 책과 씨름하느라 더운 줄도 모르고 지나갔습니다.

그러다가 2014년 가을, 제가 속한 미술 공부 모임에서 김상근 교수님을 모셔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을 공부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공부는 자연스럽게 르네상스 시대에 꽃피워진 인문학 Humanitas로 옮겨 갔고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제 고민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그때 우연히 만나 열심히 읽은 책이 스티븐 그린블랫이 쓴 '1417년, 근대의 탄생'이라는 책입니다. 1417년 독일의 수도원에서 당시 금서이던 로마 시인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발견한 인문주의자 포조 브라촐리니 이야기를 통해 르네상스를 자세히 묘사한 책입니다.

그 책을 읽고 사물의 본성을 탐구하였던 로마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해졌고, 그 생각의 뿌리인 그리스 사람들의 생각도 궁금해졌습니다. 헬레니즘의 원류를 따라 올라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끝에는 'Who am I?', 'What is life?', 'How to live?'라는 세 가지 질문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혼자서 독서만으로 그 질문의 답을 구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읽어야 하는 책 대부분이 고전이라는 것이 더더욱 문제였습니다. 고전 리스트 맨 위에는 으레 '일리아드' '오디세이아'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제목은 알지만 읽은 사람은 많지 않은 책, 바로 그 책들입니다.

그때 우연히 고전을 속성으로 공부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2015년 7월 대한민국 최고의 지식 프로듀서인 친구 강신장 대표가 자신의 야심작 '고전5미닛'을 세상에 선보였습니다. 고전을 5분 만에 읽을 수 있게 동영상으로 만든 것입니다. 저에게는 절호의 찬스였습니다.

매일 '고전5미닛'을 몇 개씩 보았습니다. 한 100편쯤 보았을까요. 처음에는 5분짜리 영상으로 대만족하였지만 사람은 본래 간사한지라 점차 감질이 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고전5미닛'에 만족하지 못하고 고전 원본을 읽고 싶다는 간절함이 끓어오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간절함은 기적을 낳는다'는 말처럼 고전을 읽고 싶은 간절함을 해결해 줄 기적이 찾아왔습니다. 2016년 봄 어느 날 강신장 대표, 김상근 교수와 같이 저녁을 먹으며 서로 의기투합하여 고전 공부 모임을 만들자고 결의한 것입니다. 기획 강신장, 강의 김상근, 응원 조근호입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지금 5반에 총 300명의 공부 모임으로 발전한 [루첼라이 정원]입니다. [루첼라이 정원]은 메디치 가문을 만든 코시모 데 메디치가 시작하여 손자 로렌초 데 메디치가 계승하였다가 그가 죽고 루첼라이 가문이 이어받은 고전 공부 모임의 이름입니다.

2016년 가을, 첫 학기를 시작한 루첼라이 정원은 현재 6학기째 공부하고 있습니다. 매 학기 10강, 고전을 발췌독하는 방식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절대로 제 생애 읽을 것 같지 않던 그 고전을 꽤 읽었습니다. 강신장 대표가 최고의 기획을 하면 김상근 교수님이 최고의 강의를 해주십니다.

1학기에는 서양 기본 고전 14권, 2학기에는 로마사 및 로마 고전 11권, 3학기에는 게르만 고전 명저 10권, 4학기에는 인도 고전 명저 10권, 5학기에는 셰익스피어 명저 10권을 모두 김상근 교수님이 강의해 주셨습니다.

[한 분의 스승께서 똑같은 학생들을 상대로 5학기 동안 총 55권의 고전을 가르쳤다는 사실]은 인류 지성사에 전무후무한 일일 것입니다. 과연 한 사람이 그 많은 고전을 가르치는 것이 가능한 일이냐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김상근 교수님은 신학 전공이십니다.

그러나 그 강의를 전부 들은 제 결론은 이렇습니다. 저희는 전공자가 아닌 일반 교양인입니다. 고전을 공부하는 방법은 여러 갈래가 있을 것입니다. [루첼라이 정원]의 목표는 자신의 삶을 돌아 볼 수 있는 질문을 만나게 하는 것입니다. 바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시간입니다.

그런 이유에서 55권의 고전을 각 분야 전문가로부터 강의를 듣는 것보다 저희와 고민을 공유하는 한 스승으로부터 그 고전에 있는 핵심 구절을 뽑아 강의 듣는 방식이 훨씬 좋았습니다, 매 강의마다 감동이었습니다.

2012년 여름,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고민에서 시작한 저의 공부는 이렇게 방대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공부한다고 다 이해하는 것도 다 기억하는 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무엇을 다시 공부하여야 하는지는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 5학기 동안 인생을 고민할 화두를 수없이 던져주신 김상근 교수님께 이 편지를 빌어 진심으로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올리고, 이런 기회를 만들어 준 친구 강신장 대표에게도 우정어린 고마움을 표하고 싶습니다.

오늘 제 공부 역정을 소개해 드린 것은 공부에 대한 갈증을 가진 분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그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리려는 생각에서 쓴 것입니다. 공부는 지루하고 외로운 길입니다. 독학도 좋지만 좋은 스승과 친구가 있을 때 더 열심히 매진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행복한 학생이고 제 공부는 계속될 것입니다

▶필자 조근호

1959년 충남 서천출생. 대일고. 서울대 법대 1981년 사시 21회 합격. 서울 춘천.대구지검 검사 서울지검 형사 2부장. 서울지검 형사 5부장, 대검 검찰 연구관, 대구지검 2차장검사. 대검법죄 정보과장,. 대검 범죄정보기획관. 대검 공판부장, 사법연수원 부원장 대전지검 검사장. 부산 고검 검사장. 법무연수원장, 법무벌인 행복마루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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