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호기심에서 시작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 그래서 여행은 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중국 신장(新疆, 신강)의 톈산산맥(天山山脈, 천산산맥)을 향해 떠날 때도 그랬다. 일정은 2013년 7월 20일부터 28일까지로 잡혔다. 떠나기 며칠 전, 6월 하순 신장 우루무치 동남쪽에 있는 투루판에 다녀온 사진작가 한 분과 전화통화를 하였다. 그곳의 날씨를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그 분의 대답은 서울과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서울은 이미 푹푹 찌기 시작하고 있었다. 밤 기온은 어떠한지 물었다. 나로서는 “밤에 기온이 많이 떨어지지 않느냐”는 물음이었다. “쭉 에어컨 잘 되는 호텔에서 숙박을 했기 때문에 잘 모르겠다”는 답이었다. “밤에도 덥지 않느냐”는 질문으로 아신 모양이다. 나의 질문이 정확하지 않았던 탓이다. 아무튼 서울과 별 차이가 없다는 설명이었다.
신장은 우리나라보다 몇 배가 큰 땅이다. 한반도 면적의 7.5배이며 중국 총면적의 6분의 1을 차지한다. “신장을 보기 전에는 중국이 크다는 말을 하지 말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후일 생각해보니 고산지대인 우루무치 서쪽 톈산산맥 지역을 가면서 해면 아래 150미터까지 내려가는 낮고 더운 지역인 투루판의 날씨를 물어 본 것은 넌센스였다. 백두산에 가면서 제주도 날씨를 물어 본 격이다. 우리 일행이 7월 21일 자정 넘어 우루무치 공항에 도착해 호텔로 이동할 때만해도 서울과의 기온의 차이는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날씨는 여행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이므로 정확한 날씨 정보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정확히 모르더라도 고산지역에 간다면 여름철이라도 겨울옷을 준비하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이러한 상식을 확인한 것은 바로 신장 일정 첫째날인 21일 저녁, 목적지인 해발 2000미터 고지에 위치한 고산 호수 싸리이무호(賽里木湖, 새리목호)에 도착해서였다. 싸이리무호는 몽골말로 '산위의 호수'란 뜻이란다. 우루무치에서 서쪽으로 500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다. 이날 아침 우루무치의 자금호텔을 9시 5분 경 출발하여 중간에 마나스 아단지모에 한 시간여 들러 촬영을 하고 점심을 먹은 것 외에는 하루 종일 차로 달려갔다.
싸이리무호로 가는 도중 들른 붉은 색 황토흙 구릉으로 이름있는 마나스의 아단지모는 붉고 푸른 구릉이 멀리 설산 아래까지 드넓게 펼쳐진 색다른 광경을 보여주었다. 촬영을 마치고 길가의 허름한 국수집에 들러 스파게티 비슷한 매큼한 신장식 비빔국수로 점심을 때운뒤 두시 반 경 출발했다.
싸이리무호에 도착하여 시계를 보니 오후 10시 6분. 우루무치부터 13시간 가량 걸린 셈이다. 해가 거의 저물어 어둠이 서서히 내리고 있었다. (중국은 단일 시간대여서 서쪽의 오후 10시는 실제 저녁 8시 정도임) 호숫가에서 차에 내리자마자 일행은 당장 몸을 움추러들게하는 찬 바람과 마주쳤다. 쌀쌀한 바람이 매우 거세게 불었다. 모두 바람막이 점퍼를 꺼내 입었으나 찬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금새 버스로 돌아왔다.
싸리이무호가 몽골어로 ‘산위의 호수’라는 뜻이라고 했듯이 신장 지역은 과거 몽골제국의 지배를 받던 땅이어서 아직도 몽골 이름이 붙은 지명이 많다. 우루무치도 ‘아름다운 목장’이라는 몽골말이라고 한다. 싸이리무호는 해발 2072미터에 수심은 100미터의 큰 호수다. 그런데 호수변 여기저기에 철조망이 쳐져있었다. 이곳은 카자흐족 유목민 지역인데 호숫가에서 함부로 방목을 못 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아무튼 인공의 제약이 여기저기 많이 눈에 띄어서 맘에 걸렸다.
원래는 싸이리무호에 도착해 일몰을 찍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미 해는 져버린데다가 하늘이 잔뜩 흐려 찬바람 속에 호숫가를 잠시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 발생했다.
버스가 호숫가에서 호텔로 출발할 때 날은 이미 완전히 어두워졌고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20분이면 간다고 했다. 그런데 안개가 점점 짙어지기 시작했다.
안개속에 갇히다
천천히 조심조심 가던 차가 급기야 멈춰섰다. 짙은 안개 때문에 시야가 전혀 확보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완전히 안개속에 갇혀버렸다. 한 발짝도 나갈 수가 없는 상태가 되었다. 우째 이런 일이... 산중의 날씨가 변덕이 심하다고는 하여도 이처럼 갑작스런 짙은 안개로 인해 차를 세워야 할 정도의 사태는 처음 당해보는 것이어서 모두 당황스러워했다. 비는 계속 세차게 내렸다. 어두움과 비와 안개에 갇혀버린 어이없는 상황에 모두 할 말을 잊었다. 그때 마침 호텔 측과 전화로 연락이 닿았다. 안개가 조금씩 걷힐 무렵 호텔차가 버스가 있는 곳으로 와서 우리를 안내했다.
우리 일행의 첫날 일정은 이처럼 험한 상황 후에 마무리 되었다. '용령산장'이라는 이름의 호텔에 도착하니 밤 11시12분이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식당에 밥이 남아있어 급히 저녁 식사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