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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송정은 있고 선구자는 없고:세종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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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송정은 있고 선구자는 없고

가곡 <선구자>의 진실 (1)

이정식 / 언론인 | 기사입력 2014/04/13 [20:33]

일송정은 있고 선구자는 없고

가곡 <선구자>의 진실 (1)

이정식 / 언론인 | 입력 : 2014/04/13 [20:33]

봄비를 맞으며 마산으로 

▲ 마산 조각공원 안의 일송정과 지워진 노래비

2014년 4월 12일. 이날 오전 중부지방에는 흐린 날씨에 가는 비가 흩뿌렸다. 청주를 거쳐 마산음악관과 마산문학관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나는 4년 전, 가곡 에세이 <사랑의 시, 이별의 노래> 취재를 위해 마산문학관에는 잠시 다녀온 일이 있으나 마산음악관에는 들르지 못했었다.
이날 아침 마산음악관에 도착하니 오전 10시 30분. 주차장에 차를 대고 조각공원 안에 있는 음악관으로 들어가는데 오른쪽에 정자가 하나 서 있었다. 정자위의 현판에 일송정(一松亭)이라고 써 있다.
“아하! 만주 용정의 일송정을 본떠서 세워놨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었구나.”
그런데 정자 바로 앞에 아무것도 쓰여지지 않은 작지 않은 화강암 비석이 하나 서 있었다. 자세히 보니 무언가를 써 놓았던 것을 지웠던 자국이 있다.
‘가곡 선구자 가사가 적혀있던 것을 반대 여론 때문에 지웠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났다.
안쓰러웠다.
일송정 옆에는 커다란 소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다. 가지가 조화롭게 펴진 잘 생긴 소나무였다. 바로 옆 잔디 위에는 기증자의 이름이 새겨진 자그마한 검정색 기증석이 세워져있다. 다음과 같이 써 있었다.

“금번 조두남 기념공원이 이곳에 만들어지면서 중국 용정시(龍井市)에 있는 일송정을 재현하게 됨에따라 우리 의원 일동은 일송(一松)을 기증하여 독립을 갈구했던 선구자의 푸른 기상을 영원히 기리고자 한다.
2002. 6. 25 마산시의회(제3대) 의원 일동 (이름 생략)”

자그마한 음악관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이날 첫 방문객인가 보다. 젊은 직원이 전시실의 불을 켰다.
이 직원에게 확인할 겸 모른 체하고 물었다.
“저 쪽 정자옆 비석에 무엇이 써 있던 것을 지운 것 같은데 무엇이었소?”
“잘 모르겠다”는 대답이 왔다.
나이 좀 든 직원이 옆에 있었다.
이 분 역시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음악관과 관련해 친일이니 뭐니 하는 얘기는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전시실은 소박했다.
선구자의 작곡가 조두남 선생의 유품과 지역 음악계에 끼친 업적 등을 적은 전시물이 전체의 반쯤 차지하고 있었다. 나머지 공간엔 이 지역 출신인 가곡 <고향의 노래>의 작곡가 이수인, 동요 <산토끼>의 작곡가 이일래, 가요 <불효자는 웁니다> <산장의 여인> <울고넘는 박달재>의 작사가 반야월(본명 박창오)선생의 사진과 간략한 설명이 한쪽 벽에 붙어있다. 그밖에 ‘근대 창원 음악의 흐름’이란 제목으로 이 지역의 음악 발달사가 또 다른 쪽 벽면에 트럼펫 등 전시물과 함께 길다랗게 적혀있었다.

조두남기념관에서 마산음악관으로 바뀐 사연  

▲ 용두레 우물가

음악관은 조각공원 안에 있는데, 공원 앞쪽에는 커다란 우물이 있었다. 물론 모형이다. 선구자 가사에 나오는 ‘용두레 우물가’의 모습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마산음악관은 원래 조두남기념관이었다. 마산시가 '선구자'를 작곡한 조두남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지역의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위해 11억원의 예산을 투입하고 유족들로부터 각종 자료 1천200여점을 기증 받아 2003년 5월 개관했다.
그런데 시민단체 등이 조두남 선생의 친일의혹을 제기하면서 조두남기념관은 개관한지 1개월도 안돼 휴관에 들어갔다. 이후 마산시와 시의회가 여론수렴 과정을 거쳐 이름을 마산음악관으로 바꾸고 전시내용도 조두남 선생을 비롯해 이수인, 이일래 작곡가 등 지역 출신음악가로 확대키로 결정하고 2005년 6월 재개관케 된 것이다.
대표적인 항일 가곡으로 알려졌던 <선구자>. 만주 벌판에서 말달리던 우리의 선조들의 모습을 연상시키면서 우리 민족의 가슴을 뜨겁게 했던 노래. 이 노래의 작곡과 관련해 조두남 선생이 생전에 남긴 글이 남아있다.
지금 논란은 이 글이 사실이냐 소설이냐 하는 것이다.
조두남 선생이 자신이 작곡한 유명가곡 <선구자>를 미화하기 위하여 사실을 왜곡했다는 것이 조두남기념관에 반대했던 이들의 주장이다. 과연 조두남 선생이 소설을 쓴 것일까?
먼저 조두남 선생이 남긴 글을 읽어보자. (가곡<선구자>의 진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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