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의 사랑>은 <홀로아리랑>의 작사 작곡자 한돌이 가곡으로 만든 노래다. 가곡 <독도의 사랑>은 그 뿌리를 민요풍의 <홀로아리랑>에 두고 있다. 말하자면 <홀로아리랑>의 속편 노래다.
한돌은 독도를 소재로 민요, 가요, 가곡, 동요 등 10여곡의 노래를 지었다. 모두 자신이 작사, 작곡한 것이다.
작사 작곡가이며 가수인 한돌
한돌은 작사 작곡가이며 가수다. 오랜 세월 유명한 노래를 많이 만들었는데, <홀로아리랑> <개똥벌레> <터> <유리벽> <조율> <여울목> 등이 그것이다. <조율>은 2012년 TV프로그램 <나는 가수다>에서 JK 김동욱이 불러서 더 유명세를 탔다. 한영애는 그녀 나름의 독특한 허스키 음색으로 이 노래를 호소력 있게 부르고 있다. 요즘엔 유튜브에 들어가 보면 한돌이 지은 대부분의 노래를 들어볼 수 있다. 나도 한돌의 노래를 유튜브에 들어가 가끔 듣는다. 한돌은 자기가 가사를 짓고, 거기에 작곡을 하고 자신이 노래까지 부른다. 그의 음색은 털털하여 구수하지만 그 자신이 그렇게 대중적이지는 않다. 노래를 썩 잘 부르는 것으로는 평가받지 못한다는 얘기다. 그의 대부분의 히트곡은 본인이 불러서 히트한 것이 아니고 신형원, 서유석, 한영애 등 다른 가수가 불러서 히트했다. 유명가수 조용필이 자신이 작곡한 노래를 본인이 불러 히트한 데 비하면 한돌의 가치는 가수 보다는 작사 작곡 쪽에 더 있다고 할 수 있다.
노래는 같은 노래라도 누가 어떻게 부르느냐에 따라 관심이 달라지기도 한다. <홀로아리랑>은 노래를 만든 한돌을 비롯, 오랫 동안 여러 가수들에 의해 불려졌지만, 2005년 조용필이 평양에서 부르고 나서 더 인기가 올라갔다.
조용필, 북측 요청으로 평양에서 <홀로아리랑> 불러
당시 조용필이 평양에서 <홀로아리랑>을 부른 것은 의외였다. 조용필은 좀처럼 남의 노래를 부르지 않는 가수이기 때문이다. 한돌은 후에 조용필이 북측의 요청으로 그 노래를 불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떻게 북측에서 그 노래를 요청했을까? 북쪽 사람들은 어떻게 그 노래를 알고 있었을까?
조용필이 평양에 다녀 온 뒤 한돌이 사할린에 간 적이 있었다. 우연히 김일성 배지를 달고 있는 북한에서 온 두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함께 갔던 지인이 한돌을 작곡가라고 그들에게 소개했다. 그러면서 <홀로아리랑>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잘 안다고 하면서 몇 소절 부르기까지 했다. 북에서 온 두 사람은 <홀로아리랑>을 구전 민요로 알고 있었으며, “조용필이 평양에서 부른거 보지 못했느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남한에서 온 한돌이 이 노래의 작사 작곡가라는 사실을 그들은 믿으려 하지 않았다. 한돌도 <홀로아리랑>이 어떻게 북한까지 ‘침투’(북한에서는 히트를 이렇게 표현한다고 한다)했는지 잘 알지 못한다고 했다. 아무튼 <홀로아리랑>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과 함께 남북이 함께 부를 수 있는 흔치 않은 노래 중 하나가 되었다. 한돌이 <홀로아리랑>을 처음 구상한 때는 1988년 10월경이었다. 완성까지는 1년이 걸렸다. 물론 처음부터 제목을 정해놓고 작사를 시작한 것은 아니다. 독도에 대한 노래를 캐기(만들기) 위해 독도에 갔을 때 그의 머릿속의 주제는 ‘독도와 통일’이었다.
한돌은 함경도 피난민의 아들이다. 그의 부모는 북한에 어린 두 아들과 딸 하나를 둔 채 6.25 때 부산으로 피난을 나왔다가 돌아가지 못했다. 한돌은 부모가 피난 나와 낳은 아들이다. 평생 부모의 한을 보며 자랐다. 그의 노래에는 그런 부모의 한이 섞여있는 듯 하다. <홀로아리랑>이 남북 우리 민족의 가슴을 적시는 이유이다.
홀로아리랑
저 멀리 동해바다 외로운 섬 오늘도 거센 바람 불어오겠지 조그만 얼굴로 바람 맞으니 독도야 간밤에 잘 잤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