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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은 억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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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은 억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 송장길 / 언론인, 수필가
  • 승인 2019.04.30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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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변화해야 건실해져

서울 종로의 북촌 한옥에 살 때는 대문을 나서면 으레 오랜 지인을 한둘은 만나게 되고, 가볍게라도 편안한 인사를 나누곤 했다. 그러나 용인의 고층아파트로 이사한 뒤에는 어쩌다 만나는 이웃들과의 교감조차 감감하고 서먹했다. 현관을 나서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때도, 좁은 승강기를 함께 타고서도 대화는 커녕 인사조차 서로 인색했다. 심지어 같은 층의 이웃과 조우해도 통성명조차 꺼려졌다. 그렇게 며칠 지내다가 아무리 메마른 현대사회의 풍조라 해도 이런 식으로 살 수 있겠느냐는 자성에 날로 괴로웠다. 급기야 무조건 먼저 인사를 트기로 마음을 먹고, 새로 이사를 왔노라면서 인사를 건네기 시작했다.

어른들이나 젊은 층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남자들이나 여자들에게도 가리지 않고 정색을 하고 인사를 했다. 바쁘게 보이는 사람이든, 한가한 듯한 사람이든 상관 없이 미소를 머금고 가볍게 “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라는 인사말을 그들의 면상에 어김없이 꽂았다. 처음에는 당황하는 사람, 이상하게 보는 사람, 부끄러워하는 사람, 귀찮다는 듯한 사람 등등 제각각의 반응이 돌아왔다. 나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개의치 않기로 했다. 오히려 그들의 각각 다른 표정, 또는 달라지는 표정을 보며 재미를 찾으며 우정 회심의 미소를 짓곤 했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나자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건네지는 인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오히려 저쪽에서 먼저 인사가 날아오는 경우도 점차 늘었다. 한두 번 안면이 있는 경우에는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분위기가 달라졌다. 변화의 느낌은 인사를 나눌 때 상대방의 표정에서 잘 나타났다. 일종의 인지본능이자, 공감 같은 심리가 감지됐다. 누구나 만족스러워 할 그런 변화는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찾아온 것이다.

이사온 지 열 달, 이제는 승강기 앞에서든, 안에서든, 또는 아파트 앞이나 길가에서든 아는 척은 물론, 이야기까지 이어지고, 이따끔 반가움도 피어난다. 같은 층의 한 가족과는 가끔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됐다. 18층 건물에 층당 4가구 씩, 가구당 4명 가족이면 대략 288명의 공동체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를 나누는 작은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이 변화가 어떻게 진전될 지는 알 수 없다. 얼마나 넓게, 또는 얼마나 깊이 뿌리를 내려서 얼마나 길게 이어질지 가늠할 수 없다. 이 아파트 단지에 900여 가구가 입주해 있으니 3,600 여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13개 동으로 구성돼 있어서 전 주민들에게 그런 바람을 일으킬 수도 현실적으로 힘들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우리 동에서만은 일단 서로서로 가벼운 인사를 나누는 데까지는 발전한 것이다. 또 사람들은 동의할 수 있는 동기만 주어진다면 태도의 변화는 쉽게 이뤄진다는 집단 성질을 보여준 셈이다.

필자는 1970년 대에 연수차 일본에서 수 개월 체류한 적이 있다. 또 미국에서는 특파원 등으로 20여 년을 장기체류했다. 그러는 동안 부러웠던 일 중의 하나는 인사성이었다. 일본인들의 인사성은 간사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살가워서 온 세계에 잘 알려져 있고, 미국에서도 하위 문화를 빼고는 건전한 층의 인사성은 기분이 좋아질 정도로 바르고 깍뜻하다. 이러한 현상은 필경 밝은 사회의 촉매제이자, 갈등의 비용을 줄이는 윤활류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에 비해 한국인들은 인사하기에 인색하기가 이를 데 없다. 오래 전에 우연히 만난 한 외국인 여행객은 한국 사람들의 굳은 표정을 보고는 자기들에게 무슨 적대감을 품고 있는 줄 알았다고 털어놓아 쓴웃음을 자아내게도 했다.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사회 분위기, 모르는 사람에게도 무심코 인사를 던지는 풍토가 조성된다면 한국사회는 여기저기에 널려 있는 날카로운 예각을 많이 부드럽게 바꿀 것이고, 갈등의 완화에도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이 든다. 인사야 말로 대인관계의 촉수이기 때문이다. 사회변동은 다른 문화와의 빈번한 접촉과 현재 문화에 대한 발전적 각성, 사회구조의 수용적 태세, 그리고 사회구성원의 태도나 가치관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그런 영향으로 변동이 자발적이고도 서서히 이뤄지면 사회는 무리없이 새로운 문화의 변동을 순순히 받아들인다. 당연히 사회는 점진적인 발전과 진보를 이뤄나간다. 그러나 변동이 급격한 충격에 의하거나 그 정도가 심하면 사회적 상처를 수반한다. 문화적인 지체현상이나 사회적인 해체까지도 감당해야 한다. 물론 그에 따른 혼란과 비용도 뒤따르게 마련이다.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주 국가들과 스위스나 룩셈부르크, 독일 같은 유럽 국가들, 스웨덴과 노르웨이, 덴마크 등 북유럽 나라 등 최고의 선진국들은 정중동의 변화를 조용히 소화하고 있다. 밖에서 보면 조용한 듯 하지만 내면으로는 끊임 없이 자발적으로 변동하면서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유럽국가들 중에도 프랑스와 영국, 스페인, 이태리, 그리스 등은 요즈음도 비교적 급격한 사회변동으로 홍역을 앓고 있다. 당연히 나라는 불안하고 국민들은 고통스러워한다. 잘 알려진 대로 영국은 브렉씨트로, 프랑스는 내부의 인종과 종교적 갈등으로, 이태리는 정국불안으로, 그리스는 과잉복지와 경제난국으로 국난에 가까운 혼란을 겪고 있다.

한국도 대통령 탄핵이후 조선시대의 환국과 방불한 정치-사회적, 경제적 변동의 와중에 들어 있다. 새로 들어선 진보정권은 탈원전과 소득주도성장론, 대기업 중심 경제체제의 변환 등의 실험적 정책으로 경제의 위축을 빚고 있다. 인사면에서는 행정부는 물론, 공기업과 법원, 선관위, 헌법재판소까지 진영의 인사들로 채워넣었다. 전직 대통령 등 보수정권 인사들에 대한 사법처리는 가혹하다는 지적까지 떠돈다. 여권은 의회에도 유리한 포석을 하기 위해 패스트 트랙 파동까지 주도하고 있다. 헌법개정선을 의식한 듯한 선거법 개정이 현실화되면 국회는 마비되고, 여야 간에 극한대결의 대회전이 펼쳐질지 모른다. 유래가 없을 정도의 무리한 이념적 세확장 현상이며, 그에 대한 격렬한 저항이다. 급진적인 개혁은 희생을 낳았고, 기존 질서의 분노를 일으켜 갈등을 심화시켰다.

진보정권이 모든 국사를 이념으로 묶기 위해 “국정농단”과 “적폐청산”이라는 프레임으로 싸잡아 몰아치자, 보수 야권은 “‘독재타도”와 “헌법수호”를 내걸고 격렬한 저항에 나섰다. 정치의 궤도이탈 현상이다. 피 터지는 대결만 보이고, 협상과 화합의 정치력은 티끌 만큼도 보이지 않는다. 계상할 수도 없을 만큼의 국가적 손실이고, 국가의 명운에도 상처를 입히는 정치적 아집이다. 정치 지도자들이 진영논리에만 몰입하고 있는 결과이다. 특히 국정운영의 정점에 있는 문재인 대통령의 유연성이 뼈저리게 아쉽다. 물론 썪고 곪은 부조리는 도려내야 한다. 그러나 사회의 개혁을 위한 일이라면 철두철미하게 법에 의해서 공정하고 투명하게 진행돼야 한다. 또한 어떤 정치적 의도가 가미돼서도 곤란하다. 어느 정치세력에게 유리하거나 불이익을 주어서는 결코 국민의 박수를 받을 수 없다. 지금 보수 진영에서 강하게 제기하고 있는 형평성과 의도성, 그리고 자유민주주의 국가정체성에 대한 우려에 귀를 기울여야 보복의 악순환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민심은천심이다. 오늘날의 현실처럼 아무리 조직을 강화하고, 대중매체를 동원해서 합리화하고 우군화하려 해도 민심은 결코 억지로 조장되지 않는다. 상식과 순리, 그리고 민생을 중시하지 않는다면 결국 모래성을 쌓는 격이 될지 모른다. 이제라도 인위적으로 과도한 개혁을 밀어부치기보다 서서히 현실적인 개선으로 방향을 바꿔야 나라가 안정되며, 국민들이 편안해질 것이다. 스스로 변화하게 해야 나라는 건실해진다. 볼테르는 세계가 총체적인 변화에 직면하기 전에 “자기 정원을 가꾸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해 흔들리지 않는 기초 토양의 필요성을 강조하지 않았는가. 

▲ 필자 송장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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