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근호의 일상칼럼]삶의 허기를 채워줄 그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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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근호의 일상칼럼]삶의 허기를 채워줄 그 무엇.
  • 조근호 변호사
  • 승인 2019.04.28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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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근호 변호사[ 전 대전지검 검사장. 전 부산고검장. 전 법무연수원장]

그 꼬마 숙녀의 이름은 데이지, 올해 4살입니다. 그 꼬마에 대해 더 가진 정보는 사진 한 장뿐. 이런 꼬마를 지난 달  23일 토요일 아침 9시 30분 과테말라의 수도 과테말라 시티의 한 동물원에서 만났습니다. 데이지는 23살 엄마와 2살 남동생, 그리고 데이지를 교육해 주는 자원봉사 선생님 한 분과 같이 나왔습니다. 우리 일행은 저를 포함해 5명. 우리의 임무는 데이지에게 오늘 하루를 자신의 삶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날로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첫 만남에서부터 어긋나 버렸습니다. 저는 데이지에게 잘 해주려고 덥석 안았습니다. "올라 께딸" 스페인어로 "안녕"입니다. 그러나 데이지는 낯선 외국인 아저씨가 무서웠나 봅니다.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습니다. 당황하였습니다. 제가 어찌할 줄을 모르자 선생님이 데이지를 달랬습니다. 다행히 조금 지나 울음은 그쳤습니다. 저는 난감하였습니다. 하루 종일 데이지 곁에 다가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저와 일행들은 한국컴패션이 주최한 과테말라 비전트립에 참가 중입니다. 컴패션은 1952년 미국 스완슨 목사가 한국의 전쟁고아를 돕기 위해 시작한 국제 어린이 양육기구입니다. 컴패션에 참가하는 나라는 후원금을 모금하는 후원국과 그 후원금으로 빈곤층 어린이를 양육하는 수혜국으로 구분됩니다. 우리나라는 수혜국에서 후원국으로 바뀐 유일한 나라입니다. 한국컴패션은 한국의 후원자와 25개 빈곤 국가 어린이들을 1대1 결연 맺어 주고 있습니다. 데이지는 제 아내가 후원하는 과테말라의 극빈 가정 어린이입니다.

이번 비전트립에 참가한 일행들은 한국컴패션을 후원하는 기부단체 [사랑의 본부] 회원들입니다. 12명의 회원과 컴패션 측 관계자 7명 등 도합 19명이 참가하고 있습니다. 데이지를 만나기 전 3일간 방문한 과테말라 빈민가 가정들은 대부분 20대 엄마가 남편 없이 네다섯 명의 자녀를 데리고 월 5만 원 이하의 수입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말로만 듣던 최 극빈층이었습니다. 곧 부서질 것 같은 양철 지붕과 브로크 담벼락, 맨 흙바닥이 그들 삶의 터전입니다. 겨우 하루 한 끼를 먹습니다. 데이지 가정은 이보다도 더 어려운 환경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바쁜 회사 일 중에도 3월 17일 한국을 출발하여 3월 26일 도착하는 긴 비전트립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몇 년 전 딸아이가 에티오피아 비전트립을 다녀와서는 저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였습니다. 저는 당황하였습니다. 당시 딸아이와 10년 이상 냉랭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그 데이트는 딸아이와 저의 관계를 친구 관계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딸아이는 그 관계 회복의 힘을 비전트립에서 얻었다고 하였습니다. 그 후 기회 있을 때마다 비전트립을 권했습니다.

저의 인생은 외면적으로는 제법 괜찮은 인생입니다. 그러나 그 삶 안에는 늘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행복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파랑새처럼 행복을 좇았습니다. 11년째 행복을 주제로 월요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허기와 갈증은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조 변호사님은 행복을 주제로 글을 쓰시니 늘 행복하시겠어요."하십니다. "행복한 사람은 행복에 대해 생각하거나 글을 쓰지 않습니다. 그저 살지요." 저의 대답입니다.
 

 


허기와 갈증이 점점 심해졌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아내와 딸아이가 비전트립을 권했습니다. 저는 제 삶에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을 찾으러 저 혼자, 가족도 없이 과테말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데이지 옆에서 걷기 시작하였습니다. 데이지는 한 손으로 엄마 손을 잡고, 한 손으로는 딸아이가 선물한 곰 인형을 들고 있습니다. 울면서도 그 곰 인형만큼은 손에서 놓지 않습니다.

기린과 낙타가 나타났습니다. 저는 데이지에게 기린을 가르치며 "히라파 (기린)"라고 외쳤습니다. "떼 구스타 (좋아요)" 1992년 스페인 유학 시절 배웠던 스페인어를 되살려냈습니다. 데이지는 울음을 그치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조금 마음이 열린 모양입니다. 살며시 데이지 손을 잡았습니다. 데이지는 제 손을 잡고 걷기 시작합니다. 누군가가 저에게 손을 내주었다는 이 작은 사실이 이렇게 기쁠 수가 없습니다.

사자 우리가 나타났습니다. 데이지를 번쩍 안아 사자를 보여주었습니다. "레온, 떼 구스타" 데이지 입가에 미소가 생겼습니다. 데이지가 웃자 일행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잉어 연못이 나타났습니다. 데이지 손에 먹이를 쥐여줍니다. 데이지가 먹이를 주자 잉어가 모여듭니다. 아마 데이지는 생전 처음 잉어를 보았을 것입니다. 데이지는 저를 만나러 7시간 반을 버스를 타고 어제 과테말라 시티에 도착하였습니다. 동물원도 난생처음입니다. "악어" "거북이" "열대어" "플라멩코" "하마" 게다가 "펭귄"까지 데이지는 모두가 신기한 모양입니다. 오늘을 데이지 삶에 가장 기쁜 날로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다른 일행들도 데이지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있습니다. 데이지가 웃으면 너무 좋아하고, 데이지가 울면 안타까워합니다. 동영상 촬영을 담당한 수경 아줌마, 데이지와 놀아주는 순남 아줌마, 한국어 영어 통역을 맡은 원대 오빠, 영어 스페인어 통역을 맡은 자원봉사자 과테말라 언니 등 모두에게 데이지는 어린이 스타입니다.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딸아이가 준비해준 선물 보따리를 풀었습니다. 각종 학용품, 예쁜 머리띠와 팔찌들, 그리고 레이스가 달린 분홍색 드레스. 데이지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좋아합니다. 피자가 나왔습니다. 후다닥 한쪽을 해치운 데이지는 동생과 같이 숨바꼭질을 시작합니다. 동물원 야외 식당이 집처럼 편안해진 모양입니다.

데이지는 달려와 저를 쿡 찌릅니다. 같이 놀자는 뜻입니다. 제 반대쪽으로 10미터쯤 달려가서는 돌아서 저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와 안깁니다. 모두에게서 탄성이 나옵니다. 데이지는 이 놀이를 수없이 하였습니다. 제 힘이 달립니다. 순남 아줌마, 원대 오빠가 차례로 놀아 줍니다. 저는 한국에 있는 가족이 보내준 영상편지를 데이지 가족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이 순간만큼은 우리 가족 모두 데이지와 함께 있습니다.

점심을 먹고 1시간가량 놀이기구를 태워 주었습니다. 회전목마도 타고, 꼬마 기차도 타고, 어린이용 롤러코스터도 탔습니다. 이제 데이지는 지쳤습니다. 엄마에게 칭얼대더니 잠이 듭니다. 한 15분가량 지났을까요. 이제는 동물원을 나서야 할 시간입니다. 나가는 길에 상점에서 데이지 가방과 옷, 그리고 동생 옷도 사주었습니다.

작별의 시간입니다. 저는 데이지 엄마에게 데이지가 대학교 갈 때까지 후원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그리고 살다가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컴패션을 통해 부탁하라고 일러두었습니다. 끝으로 제가 평생 잘하지 못하던 어색한 이야기를 하나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데이지와 데이지 가족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고 지켜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열심히 살아가세요."

저는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 아닙니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 진정성이 잘 느껴지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순간만큼은 진심이었습니다. 하나님처럼 제가 이 가정을 도와주고 지켜 주고 싶었습니다. 사실 데이지는 제 아내가 매달 4만 5천원을 후원하는 어린이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컴패션 비전트립 과정 동안, 보고 느낀 수많은 체험이 저에게 이런 말을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한 분 한 분이 비전트립 내내 작은 예수가 되어 주세요." 이 비전트립을 인솔한 한국컴패션 서정인 대표께서 이번 비전트립을 시작하며 한 말이었습니다. 저는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오늘 데이지에게 저와 일행들은 작은 예수였을 것입니다.

데이지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가슴이 따뜻해져 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 비전트립에서 찾고 싶고, 만나고 싶었던 [그 무엇]이 느껴졌습니다. 한 번의 비전트립으로 다 채워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해결의 열쇠를 찾은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저처럼 삶에서 허기와 갈증이 느껴지실 때가 있으신가요. 한국컴패션을 통해 어린이 한 명을 소개받아 양육해 보세요. 그래도 그 갈증과 허기가 채워지지 않으시면 그 어린이를 만나는 비전트립을 떠나보세요. 분명 저처럼 해결의 열쇠를 만나실 것입니다.

그날은 데이지에게 최고의 날이었지만 저에게도 최고의 날이었습니다.

 

 

▶필자 조근호

1959년 충남 서천출생. 대일고. 서울대 법대 1981년 사시 21회 합격. 서울 춘천.대구지검 검사 서울지검 형사 2부장. 서울지검 형사 5부장, 대검 검찰 연구관, 대구지검 2차장검사. 대검법죄 정보과장,. 대검 범죄정보기획관. 대검 공판부장, 사법연수원 부원장  대전지검 검사장. 부산 고검 검사장. 법무연수원장, 법무벌인 행복마루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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