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미술의 보물창고, 모스크바의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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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미술의 보물창고, 모스크바의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2)
  • 이정식 작가
  • 승인 2019.04.19 1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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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 초상화
▲ 도스토옙스키 초상화가 있는 전시실

페로프가 그린 도스토옙스키 초상화

모스크바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은 러시아의 대표적인 회화작품은 물론이지만 유명한 러시아 문인들의 초상화도 다수 소장하고 있다. .

러시아의 국민시인 푸시킨, 러시아 문학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의 대표적인 초상화가 여기에 있다.

도스토엡스키의 초상화는 17번째 전시실에 있었다. 바실리 페로프가 1872년에 그린 것이다.

오랫동안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도스토옙스키의 초상화다. 초상화는 페로프의 명작 ‘트로이카’ ‘지상에서의 마지막 여행’등 다른 유명 작품들과 함께 전시되어있다.

초상화는 도스토옙스키가 4년간의 유렵 방랑을 청산하고 돌아온 다음해에 완성됐다. 완성됐다고 하는 것은 이 그림이 그 전해인 1871년 말부터 그려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초상화에 대해서 여러 해설이 있지만 미망인 안나의 회고록에 적힌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다 사실적이다.

초상화에 대한 안나의 회고

"그해(1871년) 겨울에는 모스크바의 유명한 미술품 수집가이자 미술관 소유주인 트레티야코프가 남편에게 미술관에 소장할 그의 초상화를 그리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이를 위해 유명한 화가인 페로프가 모스크바에서 왔고, 작업을 시작하기 전 일주일간 그는 매일 우리를 찾아왔다. 뻬로프는 그야말로 다양한 정서 상태의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를 만나 대화를 나누고 논쟁을 유도하면서 남편의 얼굴에서 가장 특징적인 표정을 포착해냈다, 그것은 표도르 미하일로비치가 예술적 사고에 몰입해 있을 때의 표정이었다. 페로프는 ‘도스토에프스끼의 창작 순간’을 초상화에 붙박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표도르 미하일로비치의 서재에 들어갔다가 그의 얼굴에 그런 표정이 떠오른 것을 여러 번 보았다. 그리고 그렇게 그가 마치 ‘자기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을 때는 아무 말 없이 서재를 빠져나오곤 했다. 나중에 이야기하다 보면 표도르 미하일로비치는 자기 생각에 완전히 빠져서 내가 들어온 것도 눈치 채지 못했고, 내가 자기 방에 다녀갔다는 것도 믿지 않았다.

페로프는 똑똑하고 친절한 사람이어서 남편은 그와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그가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면 언제나 그 자리에 참석했다. 뻬로프에 관해서는 정말 좋은 추억을 갖고 있다."

▲ 도스토옙스키 초상화 옆에서, 이정식 작가.

페로프가 도스토옙스키의 초상화를 완성한 것은 1872년 5월이었다. 다섯달이나 걸린 것이다. 이 초상화에 대해 트레티야코프가 페로프에게 준 사례비는 6백 루블이었다.

현재 모스크바 레닌 국립도서관 앞의 동상도 페로프의 그림을 보고 만든 것이라고 한다. 다만 그가 앉아 있는 자세가 어정쩡해서, “치질환자 같다”는 등 야유도 있었다. 도스토옙스키는 실제 치질 환자였다.

그림을 그린 바실리 페로프는 당대 최고 화가 중 한사람이었다. 현(縣)지사였던 게오르기 크리데네르 남작의 사생아로 태어난 그는 아버지의 작위는 물론 성(姓)도 물려받지 못했다. 태어난해도 1833년인지 1834년인지 분명치 않다. 공식문서에는 대부의 이름을 따서 바실리예프라는 성으로 등록되어있다고 한다. 미술학교에서부터 사람들이 그를 페로프라고 불렀다. ‘페로’는 러시아어로 펜이란 뜻이다. 그가 글씨를 잘 썼기 때문에 그의 선생이 붙여준 별명으로 알려져있다. 그도 이 별명을 좋아해 이름으로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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