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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조선 침탈, 러시아의 시베리아 철도 건설과 연관성 크다.이정식 작가, '광화문문화포럼' 강연서 분석
문장훈 기자  |  moonp1011@sejongeconom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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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14  15:3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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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식 작가가 광화문 문화 포럼에서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한국의 역사'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중견 문화예술인들의 모임인 '광화문 문화포럼'(오지철 회장)은 10일 조찬 포럼에 이정식 작가(현 서울문화사 사장, 전 CBS 사장)을 연사로 초청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한국의 역사'를 주제로 강연을 들었다. 

이정식 작가는 이날 강연에서 19세기말 러시아의 극동진출을 위한 시베리아 횡단철도 건설은 일본의 조선침략-대륙진출 야욕과 부딪쳐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촉발한데에 이어 일제의 대한제국 병탄을 초래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주변국들의 움직임은 이처럼 나라와 민족의 운명에 큰 영향을 미치므로 한반도 주변 4강의 움직임을 언제나 예의 주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식 작가는 이어 일제 식민지 초기에 애국지사들이 대대적인 탄압을 받은 신민회 사건(데라우치 총독 암살미수사건) 이면에는 당시 조선 천주교의 수장이었던 프랑스인 구스타프 뮈텔 주교의 밀고가 원인이 되었다며 밀고 사실이 적혀있는 뮈텔의 일기를 제시했다.  다음은 이날 이정식 사장의 강연 요지다. 

시베리아 철도건설, 청일전쟁, 삼국간섭

러시아는 19세기 후반에 들어와 극동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고 극동진출에 적극 나선다. 1860년에는 청과 북경조약을 맺어 블라디보스토크가 포함된 우수리강 동쪽을 영토로 삼는다.그 이전까지 블라디보스토크는 해삼위(海蔘威)라고 하여 중국에 속해 있었다. 그러나 블라디보스토크는 연중 4개월은 얼어 있다. 러시아로서는 부동항 확보가 절실했다. 이후 1891년부터 1905년까지 14년간에 걸쳐 진행된 시베리아 횡단철도 공사의 착공은 19세기말 동북아 정세를 요동치게 하였다.

일본은 1868년 명치유신으로 근대화의 길을 닦으면서, 대륙진출의 기회를 호시탐탐 노렸다. 일본이 섬나라의 한계를 벗어나려면 먼저 조선을 차지하고 이어 대륙으로 진출해야 한다는 정한론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다시 말해, 강대국 행세를 하려면 서구열강처럼 식민지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때에 러시아가 시베리아 철도를 건설하자, 일본은 러시아가 횡단철도를 완공한 후 극동에서 월등한 세력을 갖게 되면 일본이 대륙으로 진출할 기회가 없어질 것이라며 초조해 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조선에서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다. 허약한 조선의 조정이 청에 군대의 파견을 요청하자 일본도 거류민 보호를 이유로 조선에 출병하여 일으킨 전쟁이 청일전쟁이다. 일본은 청에 대해 압도적으로 승리한 후 시모노세키 조약을 통해 요동반도와 대만, 팽호제도를 차지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일본의 요동반도점령을 묵과할 수 없다고 보고 프랑스, 독일과 더불어 ‘일본의 요동반도 소유는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를 해치는 것’이라며 이를 거부할 경우 전쟁도 불사할 것이라고 협박하는데 이를 ‘삼국간섭’이라고 한다. 일본은 눈물을 머금고 요동반도를 도로 내놓는다. 그리고는 러시아를 치기 위해 국가적인 와신상담(臥薪嘗膽)에 들어간다.

   
▲ 이정식 작가

명성황후 시해, 아관파천, 러일전쟁, 독도점령

1895년의 명성황후 시해사건은 삼국간섭 후 조선이 러시아로 기울자 이에 대한 앙갚음으로 일제가 저지른 만행이다. 이 사건 후 겁에 질린 고종은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하는데 이를 아관파천(俄館播遷)이라 한다.

일본은 요동반도를 러시아 등의 협박으로 포기한 후 러시아와의 일전을 벼르며 군비증강에 박차를 가한다. 여순과 대련은 그후 러시아의 조차지가 되어 러시아 극동함대의 주력이 여순항에 와있게 되었다. 러시아는 삼국간섭으로 부동항 문제를 해결하였던 것이다.

그러던 중 러시아에 가있던 일본 스파이 아카시 모토지로(주 러시아 일본대사관 무관, 육군대령)가 ‘러시아가 시베리아 횡단열차 완공까지는 일본과의 전쟁을 피하려 한다’는 정보보고를 대본영에 보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완공은 1905년 10월로 예정되어 있었다. 일본은 러시아가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완공하면 러시아와 전쟁을 벌이더라도 승산이 없을 것으로 보고 1904년 2월 여순항의 러시아함대에 기습공격을 가함으로써 러일전쟁을 일으킨다. 일본은 러시아 함대를 감시하기 위해 동해상의 독도에 감시초소를 세우고 1905년 1월 독도를 시마네현에 편입시킨다.

당시 러시아와 일본의 객관적 국력 차이는 10대 1 정도라고 서방에서는 보았다. 그러나 일본은 쓰시마해전에서 발틱함대마저 궤멸시키고 러일전쟁에서 승리한다. 일본은 승리 두 달만인 1905년 11월 을사늑약을 통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음으로써 한국을 손에 넣는다.

뮈텔 주교의 밀고, 아카시의 대대적 애국지사 탄압

러일전쟁 개전 전후에 러시아와 유럽에서 암약했던 일본 스파이 아카시가 소장으로 승진되어 1907년 조선통감부의 헌병대장으로 온다. 그 후 통감부가 총독부로 승격되자 경무총장 겸 헌병사령관 즉 총독부 헌병경찰 총책이 된다. 1911년 1월 11일, 아카시에게 명동성당의 프랑스인 주교 뮈텔이 찾아온다. 천주교인 안명근(안중근 의사의 사촌동생)이 데라우치 총독 암살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밀고를 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애국지사 600여명이 체포되어 온갖 고문을 받고, 안명근은 종신형을 받는다. (신민회 사건 또는 105인 사건) 뮈텔이 밀고자였다는 사실은 사건 발생 80여년 만에 천주교 한국교회사연구소(당시 소장 최석우 신부)에서 뮈텔의 일기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밝혀졌다. 신민회 사건 후 많은 애국지사들이 상해와 만주 등으로 망명해 1919년 3.1운동 후 상해임시정부를 세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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