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구분 없는 러시아의 야간침대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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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구분 없는 러시아의 야간침대열차
  • 이정식 / 언론인
  • 승인 2019.01.12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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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열차를 타고 스타라야루사 도스토옙스키 박물관으로 출발
▲ 이른 아침 노브고로드역에 도착한 모스크바발 야간침대열차

열차에서 연분이 생기기도

러시아에서의 여행이 언제나 그렇지만 도스토옙스키 별장 박물관이 있는 스타라야루사에 가는 길도 수월치 않았다. 모스크바에서 스타라야루사까지 곧장 가는 기차를 타면 한결 편했겠지만, 기차가 자주 없었고 그나마 우리의 일정과 맞지 않았다. 우리란 나와 전(前) 고리키문학대학 박정곤 교수다. 우리는 하는 수 없이 모스크바에서 월요일 밤에 노브고로드(벨리키 노브고로드)행 야간 열차를 탄 후 그곳에서 택시를 대절해 스타라야루사까지 가기로 했다.

열차는 모스크바에서 2018년 8월 27일 밤 10시 6분에 출발했다. 야간 침대열차다. 한잠 자고 아침 6시 25분에 노브고로드에 도착했다. 8시간 20분쯤 걸렸다. 노브고로드는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중간에 있는데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더 가깝다. 이 열차는 노브고로드가 종착역이었다. 열차는 도중에 몇 군데 역에서 섰다.

모스크바에서 노브고로드까지의 거리는 약 560km이며 노브고로드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는 약 200km다. 우리가 탔던 열차는 보통 속도의 구식 열차였지만, 고속 열차는 700km가 넘는 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를 4시간 안에 주파한다. 이 경우 거의 시속 200km로 달리는 셈이다. 속도는 이처럼 열차에 따라 크게 다르다.

예약한 열차의 침대칸은 이층 구조로 된 쿠페(4인 1실)다. 우리는 1층 침대표를 샀다. 2층 표는 조금 싸다고 한다. 우리는 남아있는 두 개의 2층 침대에 아무도 안들어 와 두 사람만의 편한 잠자리가 되길 바랬으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출발 직전에 20대 초반정도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객차까지 올라온 한 젊은 남성의의 배웅을 받으며 들어왔다. 그녀는 우리에게 러시아말로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하고는 바로 2층 침대로 올라갔다. 여자는 2층에 잠자리를 펴면서 박교수와 몇 마디를 나누었다. 러시아의 열차는 침대칸이라도 남녀 구분이 없다. 그래서 열차에서 우연히 만난 남녀 간에 연분이 생기기도 한다. 운이 나빠 술주정뱅이라도 만나면 골치아프다고 한다. 이미 늦은 시간이었으므로 우리는 이내 잠이 들었다. 잠결에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가 새벽 3시쯤 2층에서 살며시 내려와 방문을 열고 나갔다.

▲ 벨리키 노브고로드의 이정표. 모스크바까지 562km,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214km 라고 적혀있다.

택시기사와의 흥정

노브고로드역에는 아침햇살이 밝게 비추고 있었다. 애당초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역 앞에는 차를 마실 곳도 음식을 파는 곳도 눈에 띄지 않았다. 자칫하면 쫄쫄 굶을 판이다. (사실 기차에서 내리기 한 시간 전쯤 혹시나 해서 가지고 갔던 컵라면을 박 교수와 하나씩 먹어두긴 했다.) 식당과 카페가 즐비한 우리나라 기차역 앞을 상상하면 낭패다. 이같은 러시아의 사정을 잘 아는 박정곤 교수가 미리 스타라야루사에 잠시 쉴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해 놓았다. 짐도 맡기고 밥도 해결하기 위해서다. 일단은 스타라야루사로 출발하기로 했다.

노브고로드에서 스타라야 루사까지는 97km. 약 100km로 기억하면 편하다. 실제 지도상의 직선 거리는 절반 정도지만 커다란 일멘 호수를 우회해 가야하기 때문이다. 과거엔 노브고로드에서 스타라야루사까지 대개 선박으로 오갔다고 한다.

박정곤 교수가 역 앞의 택시기사와 흥정을 했다. 스타라야루사까지 1500루블(한화 약 3만원)에 가기로했다. 1시간 20분쯤 걸린다고 했다. 이곳 택시 기사의 흥정 방식을 이날 처음 알게 되었는데, 1km 당 20루블로 계산한단다. 스타라야루사는 약 1백km 이므로 이 계산법에 따르면 2000루블이다. 우리 돈 4만원이다. 그것을 흥정하여 깎은 것이다. 환율이 높았던 3~4년 전이라면 7~8만원 거리다. 속도계를 보니 보통 시속 약 100km의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역에서 아침 7시 10분에 출발했는데 스타라야루사에 도착하니 오전 8시 30분이다. 1시간 20분 걸렸다.

우리는 일단 게스트하우스로 들어갔다. 허름한 목조 이층집이다. 방에 가방과 배낭을 내려놓고 작은 주방에 차려놓은 아침을 먹었다. 수프와 흑빵과 흰빵, 치즈와 햄 몇 조각에 차가 전부였지만 아침으로 부족하지는 않았다.

그리고는 곧바로 도스토옙스키가 50대에 줄곧 살았던 별장 박물관을 찾아갔다. 박물관으로 가는 길에 그의 동상도 보고 도스토옙스키 가족이 다니던 정교회 성당도 봤으며 드디어 당도한 페레리치차강 강변길을 따라 조금 걸어가니 마침내 사진을 통해 눈에 익은 녹색의 박물관 건물이 나타났다. 여기서 1시간 반 정도 유흐노비치 관장대행의 안내로 설명을 들었다.

▲ 스타라야루사 도스토옙스키 별장 박물관과 페레리치차강

스프와 빵 뿐인 식사도 감사할 일

도스토옙스키 별장 박물관을 나와 인근에 있는 새로 생긴 카라마조프씨네 형제들 소설 박물관의 외관을 카메라에 담고 보고 나니 1시 가까이 되었다. 박물관이 대개 월요일에 휴관을 하기 때문에 화요일에 간 것인데 소설 박물관은 마지막 화요일도 휴관이라니,···우째 그런일이!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또 점심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중에 식사를 할만한 곳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박 교수가 게스트하우스에 전화를 해서 점심을 부탁했다.

전화를 끊고서 하는 말이 “스프와 빵 밖에 없다”고 한다는 것이었다. 게스트하우스도 기본적으로는 투숙객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체제가 아닌 것 같았다. 부탁하면 간단하게 차려주긴 하지만.

도착해 점심상을 보니 과연 간단했다. 흑빵과 흰빵 몇 조각과 야채숲이 전부였다. 아침에는 치즈와 햄도 몇조각 있었는데 그것마저 없었다. 완전 다이어트식이다. 이날은 아침과 점심을 그렇게 때웠다.

방값과 두 번에 걸친 식사 값을 합친 요금은 노브고로드에서 스타라야루사까지 올 때의 택시비와 같았다. 우리는 두 번이나 식사를 해결하게 해 준데 대한 감사의 뜻으로 팁을 더 얹어 주었다. 러시아에서는 팁이 없는 것이 상례지만 그렇다고 더 주는 돈을 마다하는 사람은 없다.

노브로고르로 타고 갈 택시는 전화로 쉽게 연결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길에서 손 흔들어 택시 잡는 것이 대세이지만, 땅이 큰 러시아에서는 그런식으로 택시를 잡기는 어렵다. 그래서 일반 승용차도 택시 연결망 즉 차량공유시스템에 가입을 할 경우 택시영업이 가능하도록 되어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영업용 택시에 타격을 줄까봐 아직까지 도입하지 못하고 있는 이른바 카풀 제도다.

스타라야루사에서 노브고로드로 돌아 갈 때는 택시비를 올 때 보다 조금 더 지불했다. 조금 달리다 보니 도로 오른쪽 숲 사이로 일멘 호수가 보였다. 잠시 차를 세우게 하고 사진을 몇장 찍었다. 호수 끝이 보이지 않았다. 꽤 넓은 호수다. 도스토옙스키 부인 안나의 회고록에 노브고로드에서 스타라야루사까지 호수를 빙 돌아 육로로 가면 80베르스타, 뱃길로는 40베르스타라고 적혀있다. 1베르스타가 1.0668km이므로 호수 폭이 최소 40km 이상 된다는 이야기다.

▲ 노브고로드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는 열차의 내부. 전면에 서 있는 이가 박정곤 교수.

노브고로드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노브고로드에 도착하니 4시다. 우리의 다음 목적지 상트페테르부르크행 저녁 열차는 6시 6분에 출발이다. 이 열차는 당초부터 사전 예약은 안되고 1시간 전에 와서 표를 끊어야 한다고 해서 스타라야루사에서 서둘러 온 것인데 나중에 보니 지정된 좌석이 없고 입석도 가능한 열차였다.

맥도널드가 역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 여기서 햄버거를 저녁 삼아 먹으며 티켓 창구가 문을 여는 5시까지 기다렸다. 시간이 되어 박 교수가 창구에 갔는데 한참만에 돌아왔다. 가 보니 벌써 줄이 길에 늘어서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시간이 걸린 것이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는 약 200km. 열차의 외관은 날씬한 고속철 타입이다. 내부는 우리나라 KTX 일반석처럼 생겼다. 중간에 어느 역에서 노인이 승차했는데 자리가 없어서 입구쪽에 서 있는 것을 보고 박정곤 교수가 자리를 양보했다. 자리를 내준 잘 생긴 중년의 남성이 한국 사람인줄은 몰랐을 것이다. 여러 역에서 정차를 하는 바람에 가다 서다를 반복해 약 3시간 만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했다. 도착역의 이름은 모스크바역이었다. (*러시아의 역 이름은 대개 가는 쪽 방향의 도시 이름을 다는 경우가 많다. 모스크바역이면 모스크바쪽으로 가는 열차가 출발하는 역이라는 뜻. 모스크바에서 북쪽인 노브고로드나 상트페테르부르크 쪽으로 갈 때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옛 이름인 레닌그라드역에서 열차를 탄다.) 역주변의 화려한 야경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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