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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소설 정약용 -다산 해배 2백주년 기념 출간정찬주 지음, 한결미디어
이호 기자  |  webmaster@sejongeconom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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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2.10  11:3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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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정약용- 정찬주 장편소설

다산의 찬가(讚歌)에 가리어진 다산의 슬픈 노래

2018년은 다산 해배 2백주년이자 다산 탄신 256주년이다. 올해 들어 방송 언론에서 다산 해배 2백주년을 기념하여 적잖게 재조명했다. 그러나 올 한 동안 소설로서 재조명하기는 󰡔소설 정약용󰡕이 처음이다. 방송 언론의 재조명은 대부분 실학자 다산을 찬양하는 찬가였다. 그러나 󰡔소설 정약용󰡕은 실학자 정약용이 아니라 인간 정약용을 다루고 있다. 정약용의 눈부신 업적이 아니라 정약용의 내면에 숨겨진 눈물, 회한, 고독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소설은 특히 정약용이 유배를 가 있는 동안 홍임 모(母)라고 불린 강진여인과의 사연에 많은 양을 할애하고 있다. 실학자 다산을 기대했던 독자들은 내심 놀랄지도 모른다. 실제로 소설은 정약용의 저술 작업의 내용과 고충보다는 유배시절에 사랑했던 여인, 제자, 강진의 산야, 음식 등을 이야기하며 병풍 속의 수묵화처럼 펼쳐지고 있다. 그러나 풍경 너머에서는 정약용의 깊은 내상(內傷)들이 언뜻언뜻 아프게 다가온다. 작가가 정약용의 슬픈 노래, 즉 비가(悲歌)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소설 정약용󰡕은 정약용의 유배시절을 샅샅이 다루고 있으며, 정약용이 애타게 기다리던 읍중제자 황상과 해후한 뒤 75세 부부 회혼일에 질곡의 삶을 내려놓음으로써 끝을 맺는다.

다산이 사랑했던 그림자 여인과 차(茶), 제자와 가족 이야기

󰡔소설 정약용󰡕은 정약용이 강진 유배시절 실학자로서의 강학과 눈부신 저술 작업 이면에 서성거리는 강진 여인 홍임 모와의 숨겨진 이야기를 많이 다루고 있다. 다산을 연구하는 어떤 학자도 주목하지 않고 다루지 않았던 역사 저편으로 사라져버린 홍임 모를 작가는 애정 어린 눈으로 불러내고 있는 것이다. 작가후기의 다음과 같은 부분도 작가의도를 충분히 짐작케 한다.

‘강진으로 유배 온 다산은 동문 밖 밥집 노파를 통해서 자신을 돌아보고 지난날의 교만을 버린다. 초당으로 가서는 본연의 선비로 돌아가 강학을 열고 밭뙈기를 일구며 농부들의 수고를 경험한다. 그러던 중에 다산은 남당포 여인을 동암에 들였고 홍임이라는 딸을 얻는다. 초로의 나이에 늦둥이를 보았으니 얼마나 사랑스러웠을까. 훗날 홍임에게 주려고 꽃핀 고매(古梅)에 새 한 마리가 나는 그림을 그려둔다. 한때 다산은 유배생활의 후유증으로 반신 마비가 와 절망한다. 그러나 홍임 모가 날마다 차(茶)로 병수발을 하여 다산이 다시 집필할 수 있게끔 해준다.

마침내 다산은 해배가 되어 고향 마재로 간다. 뒤에 홍임 모와 홍임이도 마재로 갔지만 곧 초당으로 돌아오고 만다. 초당과 마재의 공기는 견디지 못할 만큼 달랐다. 그래도 다산은 생이별을 감내할 뿐이다. 마재의 아내와 가족들도 신산하기는 마찬가지. 다산은 홍임 모가 덖어 올리는 햇차로 그녀의 외로운 살림살이를 짐작할 뿐, 몇 해가 지나 그마저도 아득해지자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는다.’

뿐만 아니라 󰡔소설 정약용󰡕은 혜장선사와 초의선사 등이 등장하면서 남도 다도(茶道)가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차의 제작 과정이 반복 언급됨으로써 한 권의 다서(茶書)를 읽는 듯한 즐거움을 준다. 차에 대해 조예가 깊은 작가의 심미안이 군데군데 발휘되어 행간에 차향(茶香)이 스며있는 듯하다. 선비는 유배를 가더라도 강학을 연다는 전통에 따라 다산 정약용도 강진의 읍중제자와 초당제자들을 가르친다. 저술하는 데 강진제자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출세지향적인 일부 제자에게 실망도 한다. 그러나 작가는 미완의 인간이 가질 수 있는 허망한 꿈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런 제자의 캐릭터도 소설이 끝나갈 때까지 섬세하게 살려내고 있다. 물론 가족의 이야기도 빼놓지 않는다. 하피첩을 통해서 아들들에게는 인간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신산한 삶을 살아온 아내에게는 해배 이후 못다 한 사랑을 보여준다. 살아남은 형(정약현)과 형수들, 친구에 대해서는 마음으로나마 인간의 도리를 다한다.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는 세월이 심판해준다

󰡔소설 정약용󰡕에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은 천주교 박해사이다. 정약용 일가의 고난은 1801년 신유박해로 시작된다. 정약용의 동생(정약종), 매형(이승훈), 조카사위(황사영)는 참수당하고 형(정약전)과 조카(정마리아)는 유배를 간다. 그런데 정약용은 일가의 참혹한 시련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살아남아 실학을 집대성한다. 정약용은 선비로서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는 세월이 심판해준다. 정약용을 시기하고 모함했던 당시 인물들은 우리들에게 잊혀져버렸지만 정약용은 다시 살아나 오늘 우리들의 스승으로 존경받고 있는 것이다. 2012년에는 한반도의 울타리를 넘어 유네스코가 루소, 헤르만 헤세, 드비쉬, 정약용을 세계의 기념 인물로 지정한 바 있다. 유네스코가 다산 정약용을 선정한 이유로 ‘정약용은 매우 중요한 한국 철학자로서 의 업적과 사상은 한국 사회와 농업, 정치 구조의 현대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밝힌 바 있다. 남의 말을 빌 것도 없이 일찍이 위당 정인보 선생은 다산을 가리켜 ‘다산 1인의 연구가 곧 조선의 역사 연구이며 조선 근세사상 연구’라고 찬탄했던 것이다.

강진 향토언어가 영롱하게 흐르는 영랑의 시(詩) 같은 소설

󰡔소설 정약용󰡕의 또 다른 성과가 있다면 전라도 사람이 등장할 때의 대화에서 전라도와 강진 향토언어를 살려냈다는 점이다. 작가는 작가후기에서 그 배경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우리는 개구리 울음소리를 ‘개굴개굴’이라고 표현하지만 강진 촌로들은 ‘아굴아굴’ 운다고 말했다. 바가지로 물을 뜨는 샘을 ‘바가지시암’ 굴뚝을 ‘귀똘’이라고 불렀다. 사전에 반드시 등재해야 할, 이른바 표준말보다 더 실감나므로 사라져서는 안 될 강진 말이라고 생각된다. 더 말 할 것도 없이 우리말을 누부시게 조탁한 시문학파로서 정지용과 길동무가 된 김영랑 시인은 강진 향토언어를 자신의 시에 영롱하게 구사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작가가 󰡔소설 정약용󰡕 속에 왜 전라도와 강진 향토언어를 고집했는지 그 이유가 드러난다. 작가는 김영랑의 시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고백한다. 향토언어가 다소 생경할 수도 있겠지만 소설 문장의 앞뒤를 읽다보면 저절로 이해되고 결코 독해하는데 장애가 되지 않을 터이다. 오히려 아름다운 향토언어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기회가 될 것이다.

◆ 차례

1장

소내나루 뱃길/백자찻잔/주막집 봉놋방/봄나들이/겸상/남당네/유람과 독서

2장

영춘화/나를 지키는 집/꿈/순교의 시/다산화사/원족/초의/누비옷/하피첩/무담씨/홍임이/찻자리/매조도1/다신계

3장

햇차 한 봉지/미리 쓰는 묘지명/매조도2/두 제자/홍임이 출가/작별

 

작가 후기 다산의 기쁜 노래에 가려진 다산의 슬픈 노래 (다산 해배 2백주년에 부쳐)

 

작가의 말 /다산 정약용에 대하여 /참고문헌 

<한결미디어, 02-704-3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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