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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 소설 『카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의 무대 스타라야루사소설 박물관도 지난 7월 개관
이정식 / 언론인  |  webmaster@sejongeconom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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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12  17:5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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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친살해사건을 실은 1875년 당시의 러시아 신문들

당시 노브고로드 신문에 실린 부친살해사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약 3백km 가량 남쪽에 위치한 작은 도시 스타라야루사의 도스토옙스키 박물관에는 19세기 신문 두 종류가 전시되어있다. 하나는 노브고로드에서 발행되던 지역 신문 <노브고로드 현(縣) 뉴스>고, 하나는 당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발행되던 <신시대>다. 이 신문들이 전시되어 있는 이유는 도스토옙스키가 스타라야루사에 살던 1875년 이 신문들에 부친살해사건이 보도되었고 그것이 소설 카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의 모티브가 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율리야 유흐노비치 관장대행은 내게 그렇게 설명했다.

신문은 기사가 실린 그 날짜의 신문은 아니었다. 카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의 핵심주제는 인간의 가장 패륜적 범죄인 부친살해다. 따라서 그 사건이 소설의 모티브가 됐다고 주장하더라도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카라모조프씨네 형제』들 속의 부친살해사건은 이미 이보다 앞서 1862년에 나온 『죽음의 집의 기록』 에 그 싹을 분명히 보이고 있다.

도스토옙스키는 시베리아 유형소에서 부친살해사건으로 복역중인 젊은 귀족을 보았다. 그런데 그는 진범이 아니었다. 나중에 진범이 잡혔다. 그는 결국 억울한 유형살이를 했던 것이다.

유형소에서 만난 부친살해범

그러면 도스토옙스키가 유형소에서 만난 부친 살해범은 어떠한 상황에서 억울한 유형살이를 하게 됐을까? 카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의 플롯과 유사한 점이 많이 발견된다. 죽음의 집의 기록에 나오는 그 대목은 다음과 같다.

“귀족 출신이었던 그는 품행이 아주 방탕해서 빚더미에 올라앉고 말았다. 아버지가 그를 붙들고 설득했지만, 아버지에게는 집도 있고, 농장도 있으며, 돈도 많아 보였기 때문에 아들은 유산이 탐나 아버지를 살해했던 것이다. 이 범행은 한 달만에 들통이 나 버렸다. 자기 아버지가 알리지도 않은 채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살인자 자신이 경찰에 신고를 했던 것이다. 이 한 달 내내 아들은 몹시 방탕한 생활을 했는데, 그가 집을 비운 틈에 경찰은 마침내 시체를 찾아내고 말았다. 마당에는 더러운 시궁창을 판자로 덮은 하수도가 마당의 길이만큼 길게 지나가고 있었다. 시체는 이 하수도에 버려져있었다. (···) 그는 자백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귀족의 신분과 관직을 박탈당했고, 20년의 징역이 선고되었다.

나와 함께 사는 동안 줄곧 그는 괜찮은 사람이었고, 쾌활한 영혼을 지니고 있었는데, 절대 바보는 아니라고 해도 극히 무분별하고 경솔하며 판단력이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결코 한번도 그에게서 어떤 특별한 잔혹성을 발견하지 못했다.” (『죽음의 집의 기록』, 이덕형 옮김, 열린책들, 2010)

   
▲ 카라마조프씨네 형제들 소설 박물관

부친살해범의 이야기는 『죽음의 집의 기록』의 앞부분에 처음 나온다. 물론 그 이야기가 이 작품의 주요 줄거리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유형소에서의 에피소드 중 하나다. 부친살해범에 대한 이야기는 이 책의 후반부인 2부 7장 ‘항의’편에 다시 등장하며 다음과 같이 마무리 된다.

억울한 유형살이, 진범이 잡히다

“이 장을 시작하면서, 이미 고인이 된 알렉산드르 뻬뜨로비치 고랸치꼬프 씨에 대한 <기록>의 발행인은 독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사항을 알리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한다.

<죽음의 집의 기록>의 첫 장에서 귀족 출신의 한 부친 살해범에 대해 몇 마디 이야기를 한 바 있다. 이 이야기는 때때로 죄수들이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어떤 감정도 없이 이야기하곤 하는 그런 예로 들 수 있다. 살해범은 범정에서 자신의 범죄를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사건의 상세한 부분까지 모두 알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판단해 보면, 범죄는 믿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명백하다는 것도 이야기했다.

이러한 사람들은 <기록>의 작가에게 말하기를, 범인이 완전히 방탕한 생활을 했으며 빚에 쪼들리고 있었고, 그래서 부친 사후의 유산을 탐하여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다고 말했다. 또한 이 부친 살해범이 이전에 근무했던 도시 전체가 이 사건에 대해 한결같은 이야기를 했다. 이 마지막 사실에 관해서 <기록>의 발행인도 충분히 믿을 만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 결국 <기록>에서 이야기된 것은, 감옥에서 살인자가 항상 가장 즐거운 심적 상태에 있었으며, 결코 바보는 아니지만, 매우 무분별하고 경박하고 사리 분별 없는 자일 뿐, <기록>의 작가는 그에게서 어떤 특별한 잔인성 같은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이런 말도 덧붙여 있다. <물론 나는 이 범죄를 믿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에 <죽음의 집의 기록>의 발행인은 시베리아로부터 범인이 정말로 무죄였으며, 헛되이 10년 동안을 징역속에서 고통받았다는 것과 그의 무죄가 재판을 통해 공식적으로 밝혀졌다는 소식을 입수하였다. 또한 진범이 검거되어 자백하였다는 것과 이 불운한 사람은 이미 감옥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발행인은 이 소식의 신빙성에 대해서는 결코 아무런 의심도 할 수 없다·······.

더 이상 덧붙일 필요는 없다. 이 사실이 얼마나 비극적인 일인가에 대해서, 그런 끔찍한 죄명하에서 아직 젊은 나이에 파괴되어 버린 인생에 대해서 더 이야기하고 확대시킬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실은 너무나 분명하고, 그 자체로도 너무나 충격적인 것이다. (『죽음의 집의 기록』)

앞에서 이야기했지만, 이 『죽음의 집의 기록』의 나(알렉산드르 고랸치꼬프)도, 작가도, 발행인도 모두 도스토엡스키 자신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가공의 인물 꼬랸치코프는 유형을 마치고 이주민이 되어 K시에서 홀로 살다가 쓸쓸하게 죽었다. 책 속에 언급된 가상의 도시 K시는 1857년 도스토옙스키가 마리야 이사예바와 결혼을 한 시베리아의 쿠즈네츠크로 알려져 있다.

부친살해사건의 범인으로 옴스크 감옥에서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억울한 유형살이를 한 사람은 토볼스크 출신의 육군 소위 일린스키였다.

도스토옙스키는 유형소에 있을 때부터 이 사건을 소설화 하려고 생각했다고 한다. 여기에 스타라야루사에 살 때 발생한 노브고로드 신문 등에 실린 부친살해사건도 당연히 참고가 되었을 것이다.

   
▲ 카라마조프씨네 형제들 소설 박물관의 입간판

스타라야루사는 『카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의 무대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씨네 형제들』에서는 맏아들 드미트리가 부친 살해혐의로 유죄판결을 받고 시베리아 유형길에 오르게 된다. 억울하지만 부친 살해 당일의 행적이 살해범으로 오인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부인하기에는 앞 뒤가 너무 딱딱 들어 맞는다. 소설은 드미뜨리가 유형가는 도중 탈주해 미국으로 달아나는 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 소설에서 실제 부친살해범은 부친집에서 요리사로 일하는 사생아 스메르쟈코프다. 그는 사건 후 자살한다. 그러나 그의 자살이 판결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

『카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은 도스토옙스키가 죽기 석달 전에 완성되었다. 완성된 부분은 도스토옙스키가 구상한 전체 소설의 절반이며, 그는 셋째아들 알료샤를 본격적인 주인공으로 한 2부를 계획하고 있었지만, 갑작스런 죽음으로 미완에 그치게 된 것이다.

만약에 2부로 이어졌다면, 드미트리가 계획대로 탈주에 성공할지, 아니면 그대로 유형소에 끌려갔다가 후에 무죄의 증거가 발견되어 중도에 출옥하게 될지, 그런 이야기들도 흥미로웠을 것이다.

도스토옙스키 사후 1달 후쯤인 그해 3월 1일 발생한 알렉산드르 2세 암살사건도 반드시 소설에 등장했을 것 같다. 도스토옙스키는 자신을 시베리아에서 풀어준 알렉산드르 2세를 은인으로 생각했으므로 생전에 암살 사건을 접했다면 매우 애통해 했을 것이다.

『카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의 무대가 되는 소도시는 바로 스타라야루사다. 소설에는 이 작은 도시의 풍경이 많이 등장한다. 도스토옙스키는 상트페테르부르크와 스타라야루사를 오가며 이 소설을 썼다.

스타라야루사가 도스토옙스키 사후 100년이 되는 1981년 그가 살던 별장을 정식 박물관으로 개관한데 이어 2018년 7월, 인근에 2층 규모의 ‘카라마조프씨네 형제들 소설 박물관’을 새로 연 것은 이곳이 도스토옙스키의 명작 『카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의 무대이며 그가 이곳에 살면서 그 소설을 썼다는 것이 스타라야루사로서는 크나큰 자랑거리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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