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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 박물관 기행 -노보쿠즈네츠크도스토옙스키가 첫 결혼을 한 시베리아의 오지
이정식 / 언론인  |  webmaster@sejongeconom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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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8.22  10: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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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보쿠즈네츠크 역앞에서 필자

미친 듯 사랑했던 마리야

나는 2018년 7월 18일부터 며칠 휴가를 내어 시베리아 노보쿠즈네츠크에 있는 도스토옙스키 문학박물관을 찾아갔다. 러시아에 있는 여섯 개의 도스토옙스키 박물관 중 하나다. 우리나라가 폭염으로 펄펄 끓고 있을 때였다. 시베리아의 기온은 서울 보다 10도 가량 낮았다. 아침기온이 17~18℃, 낮 기온은 23~24℃ 정도였다. 서울의 아침 기온은 28~29℃, 낮 기온은 36~38℃를 달리고 있었다.

시베리아의 외딴 도시 노보쿠즈네츠크에 『죄와 벌』 『백치』 『악령』 『카라마조프씨네 형제들』 등을 쓴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를 기리는 박물관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곳이 도스토옙스키가 미친 듯 사랑했던 첫 사랑의 여인 마리야 드미트리예브나와 결혼식을 올린 기념비적 장소이기 때문이다. 도스토옙스키는 당시 정치범으로 옴스크에서 4년간의 혹독한 유형생활을 마친 후 세미팔라친스크에서 강제 군 생활을 하던 중이었다.

도스토옙스키는 세미팔라친스크에서 마리야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유형소에서 풀려난 그해 1854년의 일이다. 도스토옙스키는 33세, 마리야는 30세였다. 그녀는 유부녀였다. 말하자면 불륜으로 시작된 러브스토리다. 그런데 둘이 몰래 사귀던 어느날 마리야의 남편이 600km나 떨어진 쿠즈네츠크로 전근을 가게 되었다. 지금의 노보쿠즈네츠크다. 도스토옙스키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일이 생긴 것이다. 쿠즈네츠크(노보쿠즈네츠크)는 그 시절에는 인구 2~3천명 정도에 불과한 작은 마을이었다.

한국에서 노보쿠즈네츠크에 가려면 일단 시베리아의 중심도시 노보시비르스크까지 가야한다. 노보쿠즈네츠크는 노보시비르스크에서 동남쪽으로 380km 떨어져있다. 노보시비르스크와 인천공항 간에는 시베리아 항공이 일주일에 두 편 다닌다. 비행시간 6시간 거리다. 그런데 노보시비르스크에서 노보쿠즈네츠크까지 오가는 교통편이 매우 불편했다. 비행기, 버스, 대절 택시 등을 고려하다가 결국 기차로 다녀오기로 했다. 기차 타는 시간만 왕복 13시간 30분이다. 혼자 떠난 이번 여행에는 노보시비르스크에서부터 현지 동포 김준길 교수가 동행했다.

노보쿠즈네츠크 도스토옙스키 문학박물관

박물관은 마리야 가족이 방 하나를 세들어 살던 통나무집을 개조한 것이다. 시베리아에서 흔히 보는 보통 규모의 가옥이다. 하급 세무관리였던 마리야의 남편 이사예프는 세미팔라친스크에서 이곳으로 전근 온 지 석 달 만인 1855년 8월에 죽었다. 알콜중독자였던 그는 빚만 남긴 채 폐결핵으로 세상을 떴다. 마리야는 이 집에서 어린 아들 파벨을 데리고 1857년 2월 도스토옙스키와 결혼할 때까지 살았다.

집의 내부는 십(十)자로 네 부분으로 나뉘어진 구조였다. 이 가운에 안쪽의 방 한 칸이 마리야 가족이 살던 공간이었다. 전시물은 사진과 그림, 약간의 상징물이 주였다. 안내를 해 준 해설사 까쩨리나 양은 자신이 이곳에서 일한지 7년이 되는데 그 이전에 한국인이 다녀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은 한국인을 처음 본다고 했다.

나는 설명을 듣다가 까쩨리나 양에게, “도스토옙스키가 마리야를 처음에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물어보았다. 도스토옙스키가 세미팔라친스크에서 사병 신분임에도 마리야 아들의 가정교사로 그집에 드나들다가 마리야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는 일부 기록이 있기 때문이었다. 까쩨리나 양은 도스토옙스키가 가정교사를 했던 것은 아니며, 벨레호프란 장교의 소개로 이사예프 부부를 알게 된 것이 마리야를 사귀게 된 계기였다고 했다.

마리야보다는 도스토옙스키쪽에서 먼저 후끈 달아올랐다. 그러던 중 마리야 가족이 멀리 이사를 하게 되자, 도스토옙스키가 충격을 받고 어쩔줄 몰라하며 엉엉 울었다는 이야기는 세미팔라친스크에서 그와 가깝게 지냈던 브랑겔 남작의 회상록에 나온다. 마리야는 체념하는 듯 했다고 한다. 마리야가 떠나자 도스토옙스키는 잠도 잘 못 자고 음식도 잘 먹지 않아 체중도 줄어들었다. 노상 초조한 모습으로 담배만 빨아대며 지냈다.

   
▲ 1858년 준위 시절의 도스토옙스키

마리야가 떠난 후 유령처럼 변한 도스토옙스키

브랑겔 남작은 마리야가 떠난 후 낙담하여 신경질적으로 변하고 몸도 쇠약해져 유령처럼 보이는 도스토옙스키가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도스토옙스키가 마리야를 한번 만나기라도 하면 불행한 상태가 나아질까하여 두 사람의 만남을 주선하기로 하고 작전을 짰다.

모험을 하는 수 밖에 없었다. 브랑겔 남작은 도스토옙스키가 간질 발작을 몇 번이나 일으켜 아파 누워있다는 소문을 온 마을에 퍼뜨렸다. 도스토옙스키는 연대장에게 군의관에게 치료를 받고 있다고 보고하고 한편으로는 쿠즈네츠크의 마리야에게 세미팔라친스크와 쿠즈네츠크 중간쯤에 있는 즈미예브에서 만나자는 편지를 보냈다.

어느날 해가 진 후 밤 10시쯤 도스토옙스키와 브랑겔은 몰래 마차를 타고 세미팔라친스크를 떠났다. 마부에게 마차를 전속력으로 몰도록 했다. 마침내 즈미예브에 도착했으나 마리야는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그녀로부터 남편의 병세가 중하고 여비가 없어 오지 못한다는 편지가 도착해있었다.

도스토옙스키는 크게 실망했다. 브랑겔은 실망해 넋을 잃고 있는 도스토옙스키를 위로하기 위해 애를 썼다. 그날 두 사람은 다시 3백km를 28시간 만에 달려 세미팔라친스크로 돌아왔다. 아무도 그들의 행적을 알지 못했다.

   
▲ 노보쿠즈네츠크 도스토옙스키 박물관

마침내 결혼은 했으나···

도스토옙스키는 결혼을 하기 위해 간 것을 포함해 모두 세차례 쿠즈네츠크에 갔다. 즈미예브까지 갔다가 마리야를 못 만나고 온 것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처음 간 것은 1856년 7월이다. 쿠즈네츠크로 가는 길목에 있는 바르나울까지 출장을 얻어 갔다가 몰래 쿠즈네츠크까지 가서 마리야를 만나고 이틀동안 지내다 왔다. 그는 이 때 마리야가 자신에게 많이 기울어졌다고 브랑겔 남작에게 쓴 편지에서 말했다. 쿠즈네츠크로 이사간 후 마리야의 도스토옙스키에 대한 감정은 전같지 않았다. 인물이 좋았던 마리야에게는 남편 이사예프가 죽은 후 중매가 여기저기서 들어왔다. 그녀는 또 베르구노프라는 20대 젊은 교사와도 교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도스토옙스키에게 보낸 편지에 비쳐 도스토옙스키를 바짝 긴장시켰다.

도스토옙스키의 두 번째 쿠즈네츠크 방문은 장교대우 준위로 승진한 직후인 1856년 11월이다. 운이 좋게도 장교대우가 되었으므로 이때는 공식으로 허가를 받고 쿠즈네츠크에 다녀갔다. 이 때 마리야에게 정식으로 청혼을 했고 그녀는 오랜 망설임 끝에 이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결혼식을 올리기 위해 1857년 2월에 온 것이다. 두 사람은 마침내 쿠즈네츠크의 아름다운 오디기트레옙스크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후 두 사람은 행복했을까? 그토록 어렵게 한 결혼이었지만 둘의 결혼생활은 행복하지 못했다. 두 사람이 각각 가지고 있던 지병도 그 원인의 하나였다. 마리야는 도스토옙스키와 결혼하기 전까지는 도스토옙스키가 간질환자인줄 알지 못했다. 결혼 직후 도스토옙스키가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는 바람에 비로소 알게 된다. 알콜중독자였던 첫 남편이 죽어 재혼을 했는데 이번에는 간질환자라니... 마리야의 충격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마리야도 폐결핵 환자였다. 결혼 두 해 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간 이후 더 악화되었다. 마리야는 도스토옙스키와 결혼 7년만인 1864년 4월, 40세로 생을 마감했다. 도스토옙스키는 마리야 사후 브랑겔 남작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그녀를 너무나 사랑했지만 우리는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녀와 나 두 사람 모두 불행했습니다”라고 썼다. 도스토옙스키는 마리야가 죽은지 3년 후인 1867년 2월, 25세 연하의 속기사 안나 그리고리예브나와 재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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