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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를 빚더미에서 구한 아내 안나의 내조
이정식 / 언론인  |  webmaster@sejongeconom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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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8.13  16: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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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베리아 노보쿠즈네츠크의 도스토옙스키 박물관

속기사였던 안나 그리고리예브나는 21세 때인 1867년 2월, 25살이나 나이가 많은 46세의 도스토옙스키와 결혼했다. 도스토옙스키는 재혼, 안나는 초혼이다. 도스토옙스키 집에 속기 일로 드나들다 결혼에 이르게 되었다.

결혼을 하고 보니 도스토옙스키의 재정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빚은 2만 루불이나 되어 도저히 갚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함께 잡지 사업을 했던 형 미하일이 갑자기 죽으면서 남긴 빚이었는데, 빚 감당을 도스토옙스키가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또한 형이 남겨 놓은 형수와 조카들, 도스토옙스키 첫 부인 마리야가 남긴 의붓아들에게도 도스토옙스키가 지속적으로 재정적 지원을 해야했다.

두사람은 결혼 두 달후인 1867년 4월, 빚쟁이와 친척들을 피해 유럽 방랑길에 오른다. 출발 비용은 안나가 혼수로 가져온 가구와 금은붙이, 모피옷 등을 팔아 장만했다.

처음에는 신혼여행을 빙자하여 출발했지만, 유럽의 여러 곳을 전전하며 4년 후에나 러시아로 돌아오게 된다. 그 사이에는 부부는 도스토옙스키에게 <러시아 통보> 등에서 부쳐주는 원고료로 근근해 생활을 계속했다.

그러나 이 고립무원의 유럽방랑 시기에도 도스토옙스키는 '백치' '악령' 등 장편 대작들을 러시아의 잡지에 계속 발표해 고국에서의 명성은 전보다 훨씬 높아지게 되었다.

   
▲ 도스토옙스키의 두번째 부인 안나 그리고리예브나

 

출판업을 시작한 안나의 결단

 

유럽에서 돌아 다음해인 1872년부터 도스토옙스키 부부는 책을 직접 출판하면 어떨까하는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도스토옙스키는 젊어서부터 자기의 작품을 직접 출판하는데 관심이 있었고, 안나도 유럽에서 살 때 종종 그런 이야기를 들은바 있어서 두 사람은 유럽에서 돌아와 마무리한 『악령』부터 직접 출판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안나는 인쇄소 주인과 서적판매상 등을 만나 출판에 드는 인쇄비 등 제반 비용과 유통과 판매에 따른 수수료 등을 다각도로 알아보았다.

종합적으로 분석해 본 결과 책을 직접 출판하더라도 서적판매상에 위탁할 경우 보관, 유통, 판매를 이유로 대개 책값의 50% 밖에 받지 못할 뿐 아니라 그 돈도 책이 판매된 한 참 후에나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출판 원가를 빼고 나면 이익을 남기기 어려운 구조였다. 요즘식으로 말하면 유통마진이 너무 커서 생산자는 이익은 커녕 자칫 손해보기 쉬운 상황이었다.

안나는 친지들에게도 소설을 직접 출판하는 문제에 관해 의견을 구했다. 친지들은 경험없는 사람은 반드시 실패한다면서 모르는 사업은 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빚만 더 늘어날 수 있다고 걱정했다. 이전에도 몇몇 저자들이 직접 책을 출판했지만, 대부분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도스토옙스키 부부는 『악령』의 출판을 강행하기로 했다. 물론 안나의 결단이 작용했다.

1873년 1월 20일. 인쇄 주문한 『악령』 3천권 중 5백권이 먼저 제본되어 집으로 왔다. 안나는 <목소리>지에 『악령』의 광고를 의뢰했고, 광고는 1월 22일자에 실렸다.

광고가 실리자 이날 오전부터 서점과 서적판매상에서 사람들이 집으로 찾아왔다.

안나는 이들과 1대1로 흥정을 했다. 10권은 20% 할인, 20권은 25% 할인 50권은 30% 할인, 이런 식으로 책을 직접 팔았다. 현금으로만 판다는 원칙을 정해놓고 절대로 양보하지 않았다.

당시 악령의 권당 가격은 3.5루블이었다. 이를 위탁 판매할 경우 50%인 1.75루블밖에 받을 수 없지만, 20% 할인 가격으로 팔면 2.8루블을 받을 수 있었다. 그것도 모두 원칙대로 현금으로 받았다. 한권당 1루블 이상의 이익이 더 생기는 것이다. 서적판매는 첫날부터 성공적이었다.

도스토옙스키는 밤새 일을 하고 정오 무렵 잠을 깨는 습관이었는데, 이날은 오후 2시쯤 일어났다. 이 때는 이미 150권을 판 상태였다.

잠에서 깨어난 도스토옙스키는 안나에게 “장사는 잘 되어가오? 한 권은 팔았겠지?하고 농담처럼 물었다.

안나가, “한 권이 아니라 150권을 팔았어요.” 하자 처음엔 그것을 농담으로 받아들였다. 도스토옙스키는 안나가 호주머니에서 지폐 다발을 꺼내 보여주자 그제서야 그것이 사실임을 알고 매우 흡족해 했다. 안나는 무엇보다 자신이 관심을 가질만한 일을 찾게 되었다는 것이 기뻤다.

귀국 후 안나는 돈벌이를 하기 위해 이전에 하던 속기일을 다시 하려고 몇 차례 시도했지만, 일거리가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아닌 다른 도시들에 있어서 번번이 가지 못하고 말았다. 그런데 이제 본격적으로 전력을 투구할 수 있는 자신의 일이 생긴 것이다.

 

처음으로 생활형편이 풀리다

 

안나는 그해 『악령』을 팔아 4천 루블 가량을 벌어들였다. 물론 협잡꾼들에게 다소의 손해를 본 경우도 있었다. 그래도 귀국 2년 후인 1973년은 도스토옙스키 부부에게 여러모로 경제적 형편이 풀린 해였다.

그 해 도스토옙스키가 보수 잡지 <시민>의 편집장을 맡게 되어 연봉으로 3천루블을 받았다. (* <시민> 편집장으로 일한 기간은 1893년 봄부터 이듬해 봄까지 약 1년간이었다.) 그해 이런 저런 원고료로 도스토옙스키가 추가로 벌어들인 돈이 2천 루블 정도 되었다. 여기에다 『악령』의 이익금이 4천 루블 가량되었으니 어림잡아 연수입이 9천 루블이다.

안나의 기록에 따르면 도스토옙스키 가족의 당시 1년 생활비는 3천루블 가량이었다. (*안나는 회고록에서 3천루블 이상이라고 했다. 여기에는 집세 7,8백 루블과 장작 값 등 집에 들어가는 돈이 약 1천 루블 가량 포함되어있다.) 출판업의 시작으로 빚을 어느정도 갚을 여유가 생긴 것이다.

이 사업을 계기로 안나의 지혜와 능력을 높이 사게된 도스토옙스키는 그 후 자신이 쓴 소설을 어느 잡지에 실으면 좋을까 하는 등의 문제도 안나와 상의 했다.

출판업을 시작한 1873년은 도스토옙스키 부부가 처음으로 생계비 걱정에서 벗어난 해였을 뿐만 아니라 빚도 다소 갚을 수 있었다. 이렇게 경제적 사정이 차츰 호전되기 시작해 도스토옙스키는 비로소 안정된 상황 속에서 작품을 쓸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죽기 한해전인 1880년까지 모든 빚을 다 갚게 되었다. 야무진 안나의 공이 아닐 수 없다.

결혼 전 속기사로서 도스토옙스키와 인연을 갖게 되었던 안나는 결혼 후에도 도스토옙스키의 작품들을 받아쓰는 작업을 즐겁게 계속했다. 보통 새벽에 잠자리에 드는 도스토옙스키는 낮에 일어난 후 오후에 안나를 서재로 불러 밤새 써 놓은 것을 구술했다. 안나는 속기 작업으로 남편을 지속적으로 도울 수 있다는 것을 언제나 기쁘게 생각했다. 도스토옙스키가 안나와 결혼 후 잇단 장편 대작들이 가능했던 것은 이러한 아내의 내조 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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