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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문학기행' 노보쿠즈네츠크 도스토옙스키 문학박물관에 증정노보쿠즈네츠크는 19세기 도스토옙스키가 첫 결혼을 한 시베리아의 오지
최종철 기자  |  webmaster@sejongeconom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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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8.09  10:4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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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식 작가가 에밀리야 쉐스타코바 노보쿠즈네츠크 박물관장에게 '시베리아 문학기행'을 증정하고 있다. (2018.7.19) 좌측에 도스토옙스키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 푸시킨, 안톤 체호프 등 러시아 문호들의 문학과 시베리아와의 관계 등에 대해 쓴 이정식 작가의 <시베리아 문학기행>(서울문화사 발행)이 시베리아 노보쿠즈네츠크의 도스토옙스키 박물관에 기증됐다. 이정식 작가는 2018년 7월 19일 노보쿠즈네츠크 도스토옙스키 박물관을 방문, 에밀리야 쉐스타코바 관장에게 <시베리아 문학기행>을 증정하고 도스토옙스키의 시베리아 생활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노보쿠즈네츠크는 1857년 2월 도스토옙스키가 강제 군 복무 중 마리야 이사예바와 결혼식을 올린 곳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이곳의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린 후 부대가 있는 세미팔라친스크에 신혼집을 마련해 1859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귀환할 때까지 2년반 가량 신접살림을 살았다. 도스토옙스키의 첫 사랑이었던 첫 부인 마리야 이사예바는 결혼 7년 후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노보쿠즈네츠크 도스토옙스키 박물관은 마리야가 도스토옙스키와 결혼하기 전에 살던 셋집을 개조한 것이다. 노보쿠즈네츠크의 원래 이름은 쿠즈네츠크였으나 20세기 스탈린 시절 스탈린스크로 개명됐다가 스탈린 사후 노보쿠즈네츠크로 바뀌었다. 도스토옙스키가 결혼식을 올릴 당시 쿠즈네츠크의 인구는 2~3천명 정도였다. 현재는 인구 약 50만의 석탄채굴, 철강가공으로 유명한 시베리아의 도시가 되었다. 

   
▲ 노보쿠즈네츠크 도스토옙스키 박물관(오른쪽 목조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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