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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식의 러시아 문학기행 - 마리야가 주인공인 노보쿠즈네츠크의 도스토옙스키 박물관도스토옙스키가 첫 결혼식을 올린 시베리아 노보쿠즈네츠크의 그 성당은 없어졌지만...
이정식 / 언론인  |  nocut200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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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8.04  12:5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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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보쿠즈네츠크 도스토옙스키 박물관 앞에서 에밀리야 쉐스타코바 관장(오른쪽)과 필자

세들어 살던 통나무집을 박물관으로

노보쿠즈네츠크 박물관 본채는 마리야 가족이 세들어 살던 단층 통나무집 전체를 개조해 만든 것인데 집 자체가 크지 않다. 집의 내부는 네 부분으로 나뉘어진 십(十)자 구조인데, 이 중 안쪽 구석 방에서 마리야 가족 세 식구가 살았다. 남편 이사예프가 죽은 후에는 마리야가 아들 파벨과 둘이 살았고.

이 박물관으로 들어서면 첫 번째 전시실에 처음 보이는 것이 오른쪽 벽에 있는 마리야의 전신 그림이다. 1862년에 찍은 마리야의 전신 옆면 사진을 토대로 바샤리나라는 화가가 1996년에 그린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마리야는 금발의 미인이다. 그런데 사진에서 보이는 보이는 옆 얼굴은 바짝 마른 모습이어서 미인의 인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해설사 까제리나 양에게 마리야는 미인으로 알려져있는데 그림에서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고 했더니, 까제리나 양은, 화가가 마리야가 폐병으로 죽기 2년전 에 찍은 사진을 보고 그린 것인데 마리야가 병이 깊이 든 상태여서 그럴 것이라고 답했다. 벽면에 그림의 원본이 된 마리야의 작은 사진이 붙어있었는데, 오래된 것이어서 그 자체가 선명하지 않았다. 그래도 도스토옙스키의 첫 사랑이고 첫 결혼의 대상인데 그림은 지나치게 병색을 강조한 듯한 아쉬움이 있었다.

4개의 전시실과 작은 복도

응접실이었을 첫 번째 전시실에는 초입에 있는 마리야의 전신 그림과 함께 도스토엡스키의 대형 얼굴 그림, 도스토옙스키가 브랑겔 남작에게 쓴 편지의 사본, 도스토옙스키의 고난을 상징하는 사형장에서 입었던 흰색 수의를 다소 추상적으로 나타낸 모형물 등이 있었다. 또 둥근 탁자 앞에 앉아 도스토옙스키의 편지를 읽고 있는 모습의 마리야의 디오라마(박물관의 입체 모형)가 창문 옆에 있다.

   
▲ <아저씨의 꿈>에 나오는 모스깔료바의 살롱을 재현한 두번째 전시실

두 번째 방은 도스토옙스키가 시베리아에서 쓴 작품인 『아저씨의 꿈』에 나오는 여주인공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모스깔료바의 살롱을 소설에 묘사된 것처럼 소파, 거울, 시계, 사모바르(러시아의 전통적인 끓는 물 주전자) 등으로 꾸며놓았다.

작은 도시 모르다소프시의 오리랖 넓고 단수 높은 소설 속의 여인 모스깔료바는 아름다운 딸 지나를 죽을 날이 멀지 돈 많은 늙은 공작에게 시집보내 부유한 귀족 미망인을 만들려고 계략을 꾸민다. 이 계략은 결국 실패를 하고 말지만 여인의 악착같은 근성은 마침내 딸을 어느 도시의 시장 부인으로 만들고야 만다는 게 소설의 줄거리다.

도스토옙스키는 시베리아에서 이전에 어떤 문학인도 겪지 못한 엄청난 고난을 겪었지만 시베리아에서 군인으로 살던 기간의 문학적 축적은 별로 크지 않다. 시베리아에서의 마지막해인 1859년 『아저씨의 꿈』과 『스체판치꼬보 마을』 등 겨우 두 편을 발표했을 뿐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저작에 대한 출판금지가 풀린 것은 1857년이었다. 그해에 세습귀족의 자격도 돌려받았다. 자신의 유형생활을 어떤 사람의 수기형식으로 쓴 『죽음의 집의 기록』은 시베리아에서 상당 부분을 써놓았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돌아와서 완성했다.

소설 속 술주정꾼 마르멜라도프의 부조도

『아저씨의 꿈』을 토대로 미니 살롱으로 꾸민 둘째방과 마리야 가족이 살던 셋째방 사이에는 작은 복도가 있다. 그 한쪽 면에는 두 개의 커다란 정교회 성당이 들어 있는 당시 19세기 중엽의 쿠즈네츠크 시의 그림이 걸려있는데 두 성당 중 한 곳이 도스토옙스키가 마리야와 결혼식을 올린 아름다운 오디기트레옙스크 성당이다. 이 성당은 1764년에 건립된 것인데 1919년 러시아 내전 때 한 무신론자의 방화로 소실된 후 복원되지 못했다.

다른 두 벽면에는 마리야가 쿠즈네츠크에서 살 때 결혼까지 생각했던 도스토옙스키의 경쟁자였던 젊은 교사 베르구노프와 『죄와 벌』의 술주정꾼 마르멜라도프의 부조가 붙어있었다.

『죄와 벌』의 마르멜라도프의 부조가 붙어 있는 이유는 소설에 나오는 그의 부인 카테리나 이바노브나의 모델이 이사예바라고 분석되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카테리나는 마리야처럼 폐병환자다. 죄와 벌 속에서 마르멜라도프는 술집에서 만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에게 자기의 아내 카테리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짐승 같은 놈이지만, 내 아내인 카테리나 이바노브나는 영관(領官)의 딸로 태어난 교양있는 여자입니다. 나는 하찮은 쓰레기라 해도 좋습니다. 하지만 집사람은 숭고한 정신과 고상한 감정을 지니고 있는 교육받은 여자입니다. (···) 그 여잔 어려서부터 깨끗하게 자랐기때문에 밤낮 빨래를 하거나 걸레질을 하거나 애들 뒤치다꺼리를 해주거든요. 그대로 버려두는 성미가 아닌걸요! 게다가 가슴을 앓고 있어 가끔 피를 토하곤 합니다. (···) 우리 집사람은 유서 깊은 귀족 여학교에서 교육을 받았고, 졸업식 때는 현지사와 내빈들 앞에서 무용으로 금메달과 상장까지 받았답니다.(···) 그렇지만 여편네는 성미가 급하고 오만하여 남에게 굽히기 싫어하는 여자입니다. 비록 자기가 직접 마루를 닦고 검은 빵을 씹을지라도 남이 업신여기는 건 절대로 용납하지 않습니다,” (『죄와 벌』, 채수동 옮김, 동서문화사, 2015)

마리야 식구가 살았던 세 번째 방에는 커다란 거울이 있는 화장대 양쪽으로 두 여인의 디오라마 인형이 서있다. 한 사람은 『죄와 벌』의 술주정꾼 마르멜라도프의 아내 카테리나이고 다른 하나는 『백치』의 여주인공 나스타시야라고 했다. 마리야가 두 인물의 모델이라는 의미였다. 『백치』의 나르타시야는 대체로 강한 성격을 가졌던 도스토옙스키의 젊은 애인 수슬로바가 모델이라고 흔히 알려져 있는데 여기서는 그렇게 설명을 했다. 마리야의 성격도 만만치 않았던 모양이다.

마르멜라도프가 설명하는 아내 카테리나의 모델이 마리야라면 그럴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소설 속 주인공의 성격이 어느 한 사람의 성격만을 표현한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네 번째 방은 결혼식을 한 성당의 내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결혼식을 집전한 튜멘체프 사제의 사진도 있었다. 한쪽 벽에는 도스토옙스키가 과거 이곳에 와서 결혼식을 올렸다는 1904년 10월 10일에 발행된 <시베리아 생활>지의 기사도 전시되어 있었다. 이 기사 속에는 1858년에 찍은 장교 군복을 입은 도스토옙스키의 사진과 마리야 가족이 사던 집(현재의 노보쿠즈네츠크 도스토옙스키 박물관)과 결혼식을 올린 성당의 사진이 들어있다.

   
▲ 노보쿠즈네츠크 도스토옙스키 박물관의 도스토옙스키 얼굴상 옆에서 이정식 작가 (20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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