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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식의 러시아 문학기행] 도스토옙스키, 시베리아에서의 첫 사랑의 추억
이정식 / 언론인  |  nocut200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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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04  11: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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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메이 시를 지나는 이르티시강

미친 듯 사랑했던 유부녀 마리야

도스토옙스키는 그의 생애 중 시베리아에서 만난 마리야와의 첫 사랑을 어떻게 회상했을까? 도스토옙스키 자신이 쓴 그에 관한 구체적인 기록을 찾기는 어렵지만, 그의 첫 사랑과 관련한 이야기는 훗날 발견된 그의 편지들과 그의 첫 사랑을 목격하고 도와 준 브랑겔 남작의 회고록, 그리고 그의 작품 속에 문득 문득 나타나 있는 흔적 등을 통해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다. 도스토옙스키는 세미팔라친스크에서 사병 신분임에도 마리야 아들의 가정교사로 그집엘 드나들었다. 그러다가 둘이 눈이 맞았다. 마리야가 쿠즈네츠크로 이사를 가게되자 엉엉 울었다는 이야기는 브랑겔 남작의 회고록에 나온다.

도스토옙스키는 세미팔라친스크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간 브랑겔 남작에게 1856년 3월 23일자 편지에서 마리야를 잃는다면 이르티시 강에 뛰어들겠다고 썼다. 그가 유형을 살았던 옴스크로 연결되는 그 이르티시강이다.

“그녀를 완전히 포기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불가능합니다. 내 나이쯤 되면 사랑은 변덕이 아닙니다. 내 사랑은 2년 동안이나 계속되었습니다. 열 달 동안 떨어져 있으면서 내 사랑은 오히려 강해졌습니다. 만약 나의 천사를 잃는다면 죽어버리고 말 겁니다. 실성하거나 아니면 이르티시강에 뛰어들 것입니다.”(도스토옙스키1, 김현택 옮김, 책 세상, 2001)

당시도 비슷했겠지만, 필자가 지난(2018) 5월에 본 세미팔라친스크(현재는 카자흐스탄 세메이)를 가로질러 흐르는 이르티시강은 강폭이 넓고 물살도 거칠었다. 거기에 뛰어들겠다고 한 것이다.

마침내 결혼은 했지만...

그런데, 이런 경우 운이 좋았다는 표현이 적절치 않을지 몰라도 그녀의 남편이 전근간지 얼마 되지 않아 사망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그는 미친 듯 사랑했던 마리야와 결혼에 이를 수 있었다.

그러나 그토록 어렵게 결혼 한 후 그가 알콩달콩 재미있는 결혼생활을 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1857년 2월 쿠즈네츠크에서 결혼식을 올린 후 세미팔라친스크에 마련해 놓은 신혼집으로 돌아가다가 중간에 있는 바르나울에서 도스토옙스키가 심한 간질발작을 일으켰다. 그가 간질환자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신부는 기겁을 했다. 바르나울에서 4일간이나 안정을 취하고 난 후에야 다시 길을 떠날 수 있었다.

마리야가 폐병에 걸린 것이 결혼 전인지 후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결혼 후 마리야가 폐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리야의 죽은 남편 이사예프의 사인이 알콜중독과 관련한 신장병이란 설도 있고, 폐결핵이란 얘기도 있고 보면 마리야가 남편에게 전염됐을 수도 있다. 마리야는 결혼 후 만성 폐병환자로 살았다. 폐병으로 인해 성격 또한 점점 더 예민해져 도스토옙스키와 불화가 잦았다고 한다. 간질환자와 폐병환자의 부부생활이 편안했을리 없다.

훗날 마리야가 죽고나서 도스토옙스키는 브랑겔에게 보낸 편지에서 “마리야와의 결혼생활은 실제 불행했지만,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고 썼다.

   
▲ 세메이 시청 앞 광장에 있는 12지신 동물상

소설 『영원한 남편』에 남긴 첫 사랑의 흔적

소설이 전적으로 작가의 경험에 바탕하는 것은 아니지만, 결혼 전 마리야와 불륜이라고 할 수 있는 연인관계에서 있었을 법한 일들은 그 후 그의 작품 『영원한 남편』’에 엇비슷하게 등장한다. 『영원한 남편』은 도스토옙스키가 두 번째 결혼 후 유럽에 머물 때인 1869년에 쓴 중편소설이다.

영원한 남편의 주인공 벨차니노프는 상류사회출신으로 좋은 체격과 멋진 외모를 지녔다. 그는 나이 30세 무렵에 T시에서 1년간 지낸 일이 있는데, 그 때 이 고장 사람 트루소스키의 아내 나탈리아 바실리예브나와 내연관계를 갖게 되었다. 그녀는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외간남자와 관계를 가지면서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 소설은 그녀의 성격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둘 더하기 둘은 그녀에게 어떤 의미도 가진 적이 없었다. 무슨 일에나 자신이 옳지 않았다든지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한 적은 지금껏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녀는 지속적으로, 그리고 셀 수도 없이 남편을 배신했으면서도 전연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았다. (···) 그녀는 애인 괴롭히기를 좋아했고, 그러면서도 그것을 보충해 주는 것도 좋아했다. 그녀는 정열적이고 잔인하며 또한 관능적인 타입의 여인이었다.” (『영원한 남편』 53~54쪽, 정명자 옮김, 열린책들, 2014)

이 소설 속 여인의 성격을 마리야의 그것이라고 말할 수 는 없다. 도스토옙스키가 결혼생활 중 마리야 몰래 사귀었던 애인 수슬로바의 성격도 많이 겹친다.

하지만 『영원한 남편』 속의 다음과 같은 대목은 도스토옙스키가 세미팔라친스크 시절 마리야와 밀회시에 나누었을 듯한 내용이다.

“T시에 살고 있는 동안 벨차니노프는 몇 번인가 스스로에게 자문해 본 적이 있었다. 도대체 이 남편이라는 자는 자기 아내와의 관계를 조금이라고 의심하고 있을까 하고 몇 차례인가 그는 이 문제에 대하여 나탈리야 바실리예브나에게 진지하게 물어보았는데 그때마다 언제나 그녀는, 남편은 아무것도 모르며 결코 아무것도 눈치 챌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이 모든 일은 전혀 그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라는 약간 짜증 섞인 한결같은 대답을 들었을 뿐이다.” (같은 책 57쪽)

소설에서 다시 당시의 현실로 돌아온다. 마리야의 첫 남편 이사예프는 아내의 부정을 까맣게 모른 채 고통 속에서도 아내와 아들의 앞날을 걱정하며 죽었다. 『영원한 남편』 속의 나탈리야는 소설속의 주인공인 정부(情夫) 벨차니노프의 딸을 낳았지만 남편 트루소스키의 딸인 것처럼 속여 키우며 살다가 9년 후에 죽는다. 그녀는 벨차니노프에게 그의 딸을 낳았다는 사실을 알리는 편지를 보냈지만, 편지는 그에게 도달하지 않았고 벨차니노프는 그 사실을 나탈리야 사후에 알게 된다.

아내가 죽은 후 남편 트루소스키는 아내의 유품 속에서 숨겨놓았던 편지를 보고 딸의 진짜 아버지가 벨차니노프라는 것을 알게 되며 벨차니노프에게 복수심을 품지만 복수를 실행하지는 않는다. 모친 사망 이후 어린 딸 리자는 친 아버지로 알고 있는 트루소스키의 학대 속에 병들어 죽게 된다. 트루소스키는 돈푼깨나 있어 보이지만 시골티 나는 여자와 재혼을 하는데, 주인공 벨차니노프가 우연히도 열차 안에서 재혼한 트루소스키 부부를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은 그 여자 앞에서 친구인 체 한 후 헤어진다는 것이 대체적인 줄거리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 벨차니노프는 나탈리아의 남편 트루소스키를 ‘영원한 남편’이라고 부르는데, 영원한 남편이란 아내의 부정을 알지 못한 채 오로지 남편으로서만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일종의 조롱이다.

   
▲ 세메이의 2차대전 승전 기념탑과 꺼지지 않는 불꽃. 탑 뒤의 붉은 건물이 필자가 머물었던 세미팔라친스크 호텔.

도스토옙스키를 대문호로 키운 운명의 대지 시베리아

도스토옙스키의 여자관계는 유형생활을 마친 30대 중반, 시베리아에서 마리야를 만나면서부터 심각하고 치열하게 시작되었다. 마리야의 사망을 전후해 몇 명의 여자를 만나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헤어지고 만다. 그는 죽도록 사랑했던 첫사랑의 마리야와 결혼해 안정된 결혼생활을 꿈꿨지만, 결혼 후 마리야는 오래 병치레를 하면서 둘 사이에 자식도 낳지 못하고 죽었다. 그는 재혼하여 진정한 가정의 행복을 찾고 싶었다. 그의 그러한 바램은 40대 중반, 두 번째 부인이된 25세 연하의 속기사 안나 드미트리예브나를 만나서 이뤄졌다고 할 수 있다.

시베리아는 도스토엡스키에게 무한한 고통을 안겨 준 곳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많은 무형의 선물도 주었다.

그가 수용소에서 만난 범죄자 증에는 귀족출신의 부친 살해범도 있었다. 그는 방탕한 자였지만, 부친을 살해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가 출소 후 진범이 잡혔다. 그야말로 억울한 유형살이를 한 것이다. 이 부친 살해범의 이야기는 훗날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의 소재가 된다. 이 이야기 역시 그가 시베리아를 떠난 후 펴낸 유형시절의 수기 『죽음의 집의 기록』 속의 많은 에피소드 가운데 하나로 들어있다.

수용소에서의 쓰라린 경험뿐만 아니라 수용소를 나온 후 시베리아에서 결혼에 이르기까지 겪은 지독한 사랑의 경험도 도스토옙스키에게는 이후 소설의 중요한 소재가 되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과연 시베리아는 도스토옙스키를 대문호로 키운 운명의 대지였다.

알림: <우먼센스>가 후원하고 BK투어가 주관하는 시베리아 문학기행의 저자 이정식 작가와 함께하는 러시아 문학기행이 8월 24일부터 31일까지 78일의 일정으로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일원에서 실시된다문의 및 신청: BK투어() 02-1661-3585.
 

   
▲ 이르티시 강을 가로지르는 세메이 다리 위에서 필자 이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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