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옴스크에서 무거운 족쇄를 찬 채 4년간의 혹독한 유형생활을 마친 도스토옙스키(1821~1881)는 1854년 곧바로 7백 50km 떨어진 세미팔라친스크의 제7시베리아 보병대대에 사병으로 배속되었다. 형벌의 연장이다.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살 때 독서모임에서 비평가 벨린스키가 쓴 차르(황제) 체제를 강력 비판한 내용의 불온한 편지를 낭독한 죄였다. 사형이 선고되어 세묘노프스키 사형장까지 끌려갔다가 처형 직전 차르의 특사로 형 집행이 중단되고 4년 시베리아 유형과 4년 군복무로 감형되었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것이다. 모든 것을 포기했던 최후의 순간에 극적으로 생명을 되찾게 된 도스토옙스키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감방으로 되돌아 와서는 노래를 부르며 살아있음에 감사했다. 이같은 엄청난 사건을 겪은 후 그는 ‘이 세상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며 오래 살고 싶다’는 욕망을 갖게 되었다. 또한 자신이 겪은 일들을 소설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온갖 흉악범들이 들끓는 수용소 속에서 그는 범죄자들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그들의 심리를 분석했다. <죄와 벌> <백치> <카라마조프씨네 형제들> 등 도스토옙스키의 불후의 명작들은 모두 그러한 경험을 토대로 한 작품들이다. 세미팔라친스크에서의 군 생활 중 그는 7~8세 된 아들을 가진 마리야 아사예비라는 사랑스런 금발을 가진 유부녀를 알게 된다. 그는 온 정신을 이 여인에게 빼앗겼다. 둘은 몰래 만나는 사이로 발전했다. 그러던 어느날 하급 세무관리였던 마리야의 남편이 7백km떨어진 쿠즈네츠크로 전근을 가게 되었다. 도스토옙스키는 이별의 충격에 좌불안석이었다. 그녀가 가족과 떠나던 날 그는 친하게 지내던 지방검사 브랑겔 남작과 함께 마을 어귀까지 나가 그들을 배웅했다. 연인을 실은 마차가 멀리 사라져 갈 때 그는 장승처럼 서서 굵은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그런데 알콜중독자였던 마리야의 남편이 이듬해 신장병으로 사망하고 도스토옙스키는 우여곡절 끝에 이 여인과 결혼에 성공한다. 하지만 첫 결혼은 오래가지 못했다. 마리야가 폐결핵으로 7년 만에 사망했기 때문이다. 도스토옙스키가 뜨거운 사랑의 불꽃을 태웠던 시베리아의 세미팔라친스크는 지금 카자흐스탄 땅이다. 도시 이름도 세메이로 바뀌었다. 이곳에는 도스토옙스키와 마리야가 1857년부터 2년간 신혼생활을 했던 2층 통나무집이 도스토옙스키 문학박물관의 일부가 되어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알림 1] 러시아 문학기행 강좌 개최 제목: 도스토옙스키, 시베리아에서의 10년 강사: 이정식 <시베리아 문학기행> 저자 내용: 도스토옙스키 문학의 토대가 된 4년간의 시베리아 유형과 강제군복무 등 시베리아에서의 혹독했던 10년 세월이 그의 작품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다. 일시: 2018년 5월 29일 (화) 오후 4시 장소: 용산 서울문화사 별관(시사저널 건물) 강당 문의: <우먼센스> 편집팀 (02-799-9127) 이날 3시부터는 같은 장소에서 <우먼센스> 주최 ‘러시아 미술’(김은희 청주대 교수) 강좌도 있다. [알림 2] <우먼센스>가 후원하고 BK투어가 주관하는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푸쉬킨 등 러시아 문호들의 자취를 찾아보는 ‘러시아 문학기행’이 8월 24일부터 31일까지 7박8일의 일정으로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일원에서 실시된다. 문의 및 신청: BK투어(주) 02-1661-3585. <저작권자 ⓒ 세종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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