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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기행] 일송정은 있고 선구자는 없고
봄비를 맞으며 마산으로 2014년 4월 12일. 이날 오전 중부지방에는 흐린 날씨에 가는 비가 흩뿌렸다. 청주를 거쳐 마산음악관과 마산문학관을 찾아가는 길이었다.나는 4년 전, 가곡 에세이 취재를 위해 마산문학관에는 잠시 다녀온 일이 있으나 마산음악
이정식 / 언론인   2014-04-13
[문학기행] 보기 민망한 마산역앞 <가고파> 노래비
노래비가 그 고장의 자랑이 되려면 관리를 잘 해야 는 노산 이은상(1903~1982) 선생이 29세때인 1932년 서울에 살면서 고향인 마산합포를 그리워하며 지은 10수의 긴 시조다.이듬해인 1933년 스무살 청년 작곡가 김동진(1913~2009) 선
이정식   2014-04-13
[문학기행] 안중근 외면했던 당시 천주교 주교
안 의사는 유서에서 큰 아들이 신부가 되기를 희망했으나조선 천주교의 수장인 프랑스인 뮈텔 주교는 안 의사가 천주교인이 아니라고 부인하기도 안중근 의사의 옥중 자서전 의 마지막 부분은 저술을 마칠 때까지 사형집행을 한 달 남짓 늦춰달라고 법원장에게 요
이정식   2014-04-11
[문학기행] 중국의 설도에 비견할 한국의 황진이
설도기념관에는 석상이 안팎에 두개 설도(薛濤, 768?-832?)는 앞서 '문학기행'의 '가곡 '에서 이야기 한 것 처럼 우리가곡 의 원작자이다.“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 한갓
이정식   2014-04-10
[문학기행] 최서면 원장, 일본의 독도 왜곡 질타
"일본이 나쁜 길로 갈 가능성 있다" 국제한국연구원 최서면 원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한일 관계사 전문가이며 안중근 의사 연구에 관한 한 최고의 권위자다. 안중근 의사가 옥중에서 쓴 자서전인 를 지난 1969년 일본에서 발견해 한국에 알린 것을 비롯해 한
이정식 / 언론인   2014-04-06
[문학기행] 하얼빈역 안중근 기념관이 세워지기까지
하얼빈 조선족이 표지석 등 기초 닦고박근혜 대통령 방중 전 이태진 교수가 청와대에 조언 올해 1월 19일 중국 하얼빈역에 문을 연 안중근 의사 기념관은 새로운 한-중관계의 상징이 되고 있다.안 의사 기념관은 지난해 6월 27일 한-중 정상회담 때 박근
이정식 / 언론인   2014-04-04
[문학기행] 노래 캐는 심마니, 한돌
한돌은 음악회에서 노래를 한곡 한곡 자신이 직접 소개했다. 어디에서 어떤 상황 속에서 작사 작곡 됐는지, 독도 노래가 만들어진 사연들에 대한 설명이었다.공연 프로그램을 만들 때 기획자가 “외에 다른 독도 노래들은 관객들에게 생소하게 들릴테니 다른 히트
이정식   2014-04-02
[문학기행] 한돌, 통일 이후 부를 노래를 만들다
아인슈타인 한돌한돌의 본명은 이흥건이다. 1953년 거제 출생. 한돌이란 한개의 작은 돌이란 뜻이다. 누군가 독일어로 아인슈타인(Ein Stein)이라고 했다. 상대성 이론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물리학자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
이정식   2014-04-02
[문학기행] 바람의 선물 <홀로아리랑>
조그만 얼굴의 외로운 섬 독도한돌이 울릉도에 돌아온 다음날 석포(옛 정들포)로 가서 아는 이들을 만나 술잔을 기울이는데 한 사람이 손가락 끝으로 멀리 수평선 한쪽을 가리켰다. 1년에 열 번쯤 볼 수 있다는 독도였다. 보일 듯 말듯했다. 한참동안 눈을
이정식   2014-03-31
[여행] 한돌, 독도에서 노래를 만나다
그는 독도에 가고 싶었다. 독도에 가서 노래를 만나고 싶었다.1989년 4월, 한돌은 울릉도의 ‘푸른 독도 가꾸기 모임’ 회원들과 함께 독도에 나무를 심으러 갔다. 1988년 9월과 10월에 이은 세 번째 독도 방문이다.처음 독도에 간 것은 1988년
이정식   2014-03-31
[문학기행] 독도, '홀로아리랑'에서 '독도의 사랑'까지 (1)
은 의 작사 작곡자 한돌이 가곡으로 만든 노래다. 가곡 은 그 뿌리를 민요풍의 에 두고 있다. 말하자면 의 속편 노래다. 한돌은 독도를 소재로 민요, 가요, 가곡, 동요 등 10여곡의 노래를 지었다.모두 자신이 작사, 작곡한 것이다. 작사 작곡가이며
이정식 / 언론인   2014-03-29
[문학기행] 거사 목적은 한국 독립과 동양 평화 유지
공판기록안중근 의사는 법정에서 이토 저격 당시의 상황과 거사의 목적을 담담하게 밝혔다.하얼빈 역에서 열차에서 내린 이토를 저격한 상황은 에도 적혀 있지만, 공판에서의 진술은 더 상세하다.또한 거사의 목적에 대해서도 “개인적 원한에 의한 것이 아니라 동
이정식   2014-03-25
[문학기행] 일인들을 놀라게 한 안중근 의사의 기개
옥중의 안중근 의사를 신문했던 마조부치 검찰관의 한국어 통역관 소노키 스에키는 에 나오는 인물이다. 안 의사가 이 책에서 검찰관이 자신을 항상 후대했다고 했으니 소노키의 태도도 다름없었으리라고 생각된다.통감부 통역관이었던 소노키는 안의사 하얼빈 의거
이정식 / 언론인   2014-03-20
[문학기행] 뤼순 감옥에서의 안중근 의사
최서면 원장에 의해 처음 발견된 의 프린트본에는 거사 후 하얼빈 역에서 러시아 헌병에 붙잡혀 일본 헌병에 넘겨질 때까지만 적혀있었고 그 후 감옥에서의 일은 들어있지 않았다. 두번째 발견된 원문을 베낀 한문본도 내용이 거기까지였으므로 그것이 전부인 것으
이정식 / 언론인   2014-03-19
[문학기행] 조선총독부 일본인 고위관리들의 필독서
최서면 원장은 2011년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1969년 를 처음 입수하게 된 경위를 상세히 밝혔다. 기사는 기자와의 문답 형식으로 작성되었다. 다음은 그 문답을 이 글의 흐름에 맞게 재정리한 것이다. 60년만에 도쿄의 고서점가에 나타난 1969년
이정식   2014-03-18
[문학기행] <안응칠 역사>가 발견되기 까지
이상의 이야기는 에 대부분 나오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일제가 꼭꼭 숨겼다는 는 어떻게 거의 60년이나 지나서 세상에 나타나게 되었을까? 최서면 원장은 일본어로 번역된 프린트 본을 어떻게 입수했을까? 프린트 본은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이토를 저격하
이정식   2014-03-17
[문학기행] 안중근과 단지동맹
안중근은 29세 때인 1908년 6월, 의병 참모중장으로서 의병들을 거느리고 두만강을 건너 함경북도에 도착해 일본군과 2회에 걸쳐 전투를 벌였다.첫번 전투에서 의병들은 일본군 4명을 포로로 잡아 기세를 올렸다. 안중근은, 의병들에게 죽임을 당하리라는
이정식   2014-03-16
[문학기행]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거사 전후
오는 26일은 안중근 의사가 뤼순 감옥에서 순국 하신지 104주기가 되는 날이다. 안중근 의사는 감옥에 있을 때인 1909년 12월 13일부터 사형집행 열하루전인 이듬해 3월 15일까지 자서전 '안응칠 역사'를 썼다.그러나 '안응칠 역사'는 일제에 의
이정식   2014-03-14
[문학기행] 시베리아의 전설, 데카브리스트의 부인들 (4)
시베리아의 전설이 된 11명의 데카브리스트 부인들발콘스키의 집과 함께 데카브리스트 기념관이 된 트루베츠코이의 집에는 시베리아에서 모진 고초를 겪으며 남편들의 유형생활을 뒷바라지 했던 11명의 데카브리스트 부인들의 초상이 걸려있다. 이가운데 이번 4편의
이정식   2014-03-10
[문학기행] 시베리아의 전설, 데카브리스트의 부인들 (3)
1827년 5월 황제가 바짐시에 온다는 것을 알고 뽈리나는 군중들을 뚫고 들어가 마침내 황제 앞에 도달해 무릎을 꿇었다. (이하 장민석씨 번역에서 인용 정리)니콜라이 1세는 러시아말을 잘 모르고, 결혼한 사이가 아님에도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 시베리아로
이정식   2014-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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