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전체 242건) 제목보기제목+내용
[문학기행] 한돌, 통일 이후 부를 노래를 만들다
아인슈타인 한돌한돌의 본명은 이흥건이다. 1953년 거제 출생. 한돌이란 한개의 작은 돌이란 뜻이다. 누군가 독일어로 아인슈타인(Ein Stein)이라고 했다. 상대성 이론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물리학자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
이정식   2014-04-02
[문학기행] 바람의 선물 <홀로아리랑>
조그만 얼굴의 외로운 섬 독도한돌이 울릉도에 돌아온 다음날 석포(옛 정들포)로 가서 아는 이들을 만나 술잔을 기울이는데 한 사람이 손가락 끝으로 멀리 수평선 한쪽을 가리켰다. 1년에 열 번쯤 볼 수 있다는 독도였다. 보일 듯 말듯했다. 한참동안 눈을
이정식   2014-03-31
[여행] 한돌, 독도에서 노래를 만나다
그는 독도에 가고 싶었다. 독도에 가서 노래를 만나고 싶었다.1989년 4월, 한돌은 울릉도의 ‘푸른 독도 가꾸기 모임’ 회원들과 함께 독도에 나무를 심으러 갔다. 1988년 9월과 10월에 이은 세 번째 독도 방문이다.처음 독도에 간 것은 1988년
이정식   2014-03-31
[문학기행] 독도, '홀로아리랑'에서 '독도의 사랑'까지 (1)
은 의 작사 작곡자 한돌이 가곡으로 만든 노래다. 가곡 은 그 뿌리를 민요풍의 에 두고 있다. 말하자면 의 속편 노래다. 한돌은 독도를 소재로 민요, 가요, 가곡, 동요 등 10여곡의 노래를 지었다.모두 자신이 작사, 작곡한 것이다. 작사 작곡가이며
이정식 / 언론인   2014-03-29
[문학기행] 거사 목적은 한국 독립과 동양 평화 유지
공판기록안중근 의사는 법정에서 이토 저격 당시의 상황과 거사의 목적을 담담하게 밝혔다.하얼빈 역에서 열차에서 내린 이토를 저격한 상황은 에도 적혀 있지만, 공판에서의 진술은 더 상세하다.또한 거사의 목적에 대해서도 “개인적 원한에 의한 것이 아니라 동
이정식   2014-03-25
[문학기행] 일인들을 놀라게 한 안중근 의사의 기개
옥중의 안중근 의사를 신문했던 마조부치 검찰관의 한국어 통역관 소노키 스에키는 에 나오는 인물이다. 안 의사가 이 책에서 검찰관이 자신을 항상 후대했다고 했으니 소노키의 태도도 다름없었으리라고 생각된다.통감부 통역관이었던 소노키는 안의사 하얼빈 의거
이정식 / 언론인   2014-03-20
[문학기행] 뤼순 감옥에서의 안중근 의사
최서면 원장에 의해 처음 발견된 의 프린트본에는 거사 후 하얼빈 역에서 러시아 헌병에 붙잡혀 일본 헌병에 넘겨질 때까지만 적혀있었고 그 후 감옥에서의 일은 들어있지 않았다. 두번째 발견된 원문을 베낀 한문본도 내용이 거기까지였으므로 그것이 전부인 것으
이정식 / 언론인   2014-03-19
[문학기행] 조선총독부 일본인 고위관리들의 필독서
최서면 원장은 2011년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1969년 를 처음 입수하게 된 경위를 상세히 밝혔다. 기사는 기자와의 문답 형식으로 작성되었다. 다음은 그 문답을 이 글의 흐름에 맞게 재정리한 것이다. 60년만에 도쿄의 고서점가에 나타난 1969년
이정식   2014-03-18
[문학기행] <안응칠 역사>가 발견되기 까지
이상의 이야기는 에 대부분 나오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일제가 꼭꼭 숨겼다는 는 어떻게 거의 60년이나 지나서 세상에 나타나게 되었을까? 최서면 원장은 일본어로 번역된 프린트 본을 어떻게 입수했을까? 프린트 본은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이토를 저격하
이정식   2014-03-17
[문학기행] 안중근과 단지동맹
안중근은 29세 때인 1908년 6월, 의병 참모중장으로서 의병들을 거느리고 두만강을 건너 함경북도에 도착해 일본군과 2회에 걸쳐 전투를 벌였다.첫번 전투에서 의병들은 일본군 4명을 포로로 잡아 기세를 올렸다. 안중근은, 의병들에게 죽임을 당하리라는
이정식   2014-03-16
[문학기행]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거사 전후
오는 26일은 안중근 의사가 뤼순 감옥에서 순국 하신지 104주기가 되는 날이다. 안중근 의사는 감옥에 있을 때인 1909년 12월 13일부터 사형집행 열하루전인 이듬해 3월 15일까지 자서전 '안응칠 역사'를 썼다.그러나 '안응칠 역사'는 일제에 의
이정식   2014-03-14
[문학기행] 시베리아의 전설, 데카브리스트의 부인들 (4)
시베리아의 전설이 된 11명의 데카브리스트 부인들발콘스키의 집과 함께 데카브리스트 기념관이 된 트루베츠코이의 집에는 시베리아에서 모진 고초를 겪으며 남편들의 유형생활을 뒷바라지 했던 11명의 데카브리스트 부인들의 초상이 걸려있다. 이가운데 이번 4편의
이정식   2014-03-10
[문학기행] 시베리아의 전설, 데카브리스트의 부인들 (3)
1827년 5월 황제가 바짐시에 온다는 것을 알고 뽈리나는 군중들을 뚫고 들어가 마침내 황제 앞에 도달해 무릎을 꿇었다. (이하 장민석씨 번역에서 인용 정리)니콜라이 1세는 러시아말을 잘 모르고, 결혼한 사이가 아님에도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 시베리아로
이정식   2014-03-09
[문학기행] 시베리아의 전설, 데카브리스트의 부인들 (2)
사형 또는 유형에 처해진 121명의 데카브리스트들 가운데 결혼한 이들은 23명이었다. 사형당한 5명 가운데는 2명이 기혼자였다. 나머지 21명 가운데 11명이 남편을 뒤따라 시베리아로 갔다. 시베리아로 간 여인들 중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랑하는
이정식 / 언론인   2014-03-08
[여행] 필리핀의 오지, 사가다-바나우에 답사기 (3)
2009년 8월 31일.사가다에서 본톡까지 지프니로 한시간. 본톡에서 40년 이상은 됐을 것 같은 고색창연한 버스로 갈아타고 바나우에까지 3시간을 갔다. 버스는 바나우에로 가는 중간에 안개 자욱한 산 중턱에서 잠시 쉬었다. 간식 거리 등을 파는 조그만
이정식 / 언론인   2014-03-06
[여행] 필리핀의 오지, 사가다-바나우에 답사기 (2)
'살았다'고 만세 불러동굴은 한동안 좁은 틈새가 이리저리 계속되는 내리막 구조여서 되돌아 간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웠다. 마치 어두워진 산속의 험준한 계곡을 등불을 밝히며 내려오는 것과 같았다.그렇게 위험스런 구간을 여러 차례 지나면서 마침내 4시간에
이정식   2014-03-05
[여행] 필리핀의 오지, 사가다-바나우에 답사기 (1)
(이 글은 필자가 2009년 8월 29일부터 9월 1일까지 필리핀 루손섬 중부의 오지인 ‘사가다’와 ‘바나우에’에 다녀온 내용을 정리한 일종의 답사기이다.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는 루손섬 아래쪽에 있으며 사가다와 바나우에는 마닐라에서 북쪽으로 버스로 1
이정식 / 언론인   2014-03-03
[문학기행] 시베리아의 전설, 데카브리스트의 부인들 (1)
두 개의 데카브리스트 기념관 이르쿠츠크에는 두 곳의 데카브리스트 기념관이 있다. 하나는 세르게이 발콘스키(1788~1865)가 살던 집이고, 또 하나는 세르게이 트루베츠코이(1790~1860)의 집이다. 유형생활 끝무렵에 지어진 저택들인데 규모로 보면
이정식 / 언론인   2014-02-28
[문학기행] <부활>에서 드러난 톨스토이의 신앙관
소설 에서 톨스토이는 러시아 정교회에 대해 뿌리깊은 불신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러시아 정교회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예배당에서 행해지는 종교 의식 전반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으로 보인다.그것이 그의 작품 이 발표된 2년 후인 1901년 그가
이정식   2014-02-19
[문학기행] 시베리아 유형수들의 발에 채웠던 족쇄
19세기 제정 러시아 시절 시베리아 유형수들의 발에 채웠던 족쇄가 이르쿠츠크 시내 트루베츠코이집 지하 전시실에 있다. 무게는 12킬로그램. 일단 이 족쇄를 차고 나면 형기를 마치고 수용소를 나올때까지 족쇄를 벗을 수 없다. 병이 들어 입원을 하더라도
이정식   2014-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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